얼마 전에 휴대 전화 서비스 회사를 바꿨다.
이전에 사용하던 SK Telecom에서 KTF로 바꿨는데 바꾸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바꾼 것이다. 장장 10년 동안(사실 10년에서 몇 달 빠진다) 사용하던 회사를 바꾸면서 여러 가지 불안한 점들이 있었다. 시골 오지로 여행을 자주가는데 잘 안되면 어쩌나. 음질이 SK보다 못하면 어쩌나 등등...
기술자로 살아오면서 KTF와 SK의 전파 특성에 대해 알고 있으니 불안한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 긴 기간 동안 바꾸지 않고 이리 저리 전화기의 수명이 다할 때마다 싼 중고 폰을 알아보고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그러기가 싫었다. 내가 아무리 전화를 잘 안걸어서 이익이 남지 않는 고객이라고 해도 장장 10년을 쓴 단골 고객인데 단골에게는 비싸게 전화기를 사라고 하고 새로 가입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무료에 가깝게 싸게 파는 꼴을 보고 참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낸 전화 요금을 모아 다른 사람 전화기를 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화딱지 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체 SK Telecom은 무슨 생각으로 장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장사의 기본은 단골 확보라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데 조용히 잘 쓰는 사람은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지난 10년 동안 SK Telecom을 사용하면서 전화를 통해 나눈 대화, 전화로 이어진 인연들, 전화로 소식을 들으며 기뻐하고 슬퍼한 많은 추억들 때문에 그냥 막연하게나마 SK에 가지고 있던 좋은 감정들이 한 방에 날아갔다.
내 젊은 시절 10년 동안 늘 전화기를 옆에 끼고 있었으니 이 전화기와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었겠는가.
한밤에 경포대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해 파도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전화기를 바다 쪽으로 들고 서있던 시간들.
설악산 대청봉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그 벅찬 감정을 나눠주던 일.
헤어진 사람의 전화 번호를 전화기에서 지웠지만 손가락이 저절로 눌러지던 일.
이 모든 추억들 옆에 늘 SK Telecom이 있었는데 단지 전화기 가격 때문에 좋은 친구(SK Telecom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를 버린 기분이다.
이런 식으로 단골을 밀어내는 SK Telecom은 후회할 것이다.
이제 무작정 SK가 좋아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라고 말할 것이다. 복잡한 전파 특성에 대한 설명도, 시골 오지에서의 통화 성능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잘못하면 그냥 참을 수 있지만 공급자가 잘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SK Telecom은 추억을 함께하는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18일 수요일
2007년 4월 17일 화요일
치과 치료 후의 아픔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전혀 몰랐다.
이를 뽑는지, 이를 갈아 내는지...
마취를 하고 치료를 받으니 뭘 느끼지 못한다. 다만 뭔가 막대기가 들어와 혀 뿌리에 닿으면 구역질이 나서 괴로울 뿐이다. 오늘도 치료를 받으며 3번이나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구역질을 해야하는 나도 고역이지만 그러는 환자를 봐야하는, 그래서 치료 도중에 멈추고 기다려 줘야 하는 의사 선생님도 괴로울 것이다. 환자가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뭔가 도구를 사용해 치료를 받는 과정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기 보다는 내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늘 목에 있는 가래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게 입을 오래 열고 있으면 좀 말라서 아주 괴롭다. 구역질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덕분에 치과 치료를 받을 때마다 확 담배를 끊어 버릴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다만 치료 받고 하루 동안 금연하는 것을 괴로워할 뿐이다.
오늘은 사랑니를 마저 뽑아서 왼쪽 어금니 쪽이 아주 아프다. 점점 더 아파지는 것을 보니 마취가 깨어나는 것 같다. 아침에 깜빡하고(벌써 3번 째 치과 치료라고 이제 방심을 좀 하나 보다) 헥사메딘이라는 마취제가 좀 들어간 가글 액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번 쓰지도 않은 게 한 병이나 있는데 다시 사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입 다물고 견디고 있는데 아주 아파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러길래 평소에 치솔질을 좀 열심히 하는 건데 괜히 사탕 먹고 자고, 초코렛 먹고 자고 그랬다. 누가 말하길 현명한 사람은 들어서 알고, 똑똑한 사람은 보고 알며, 멍청한 사람은 당해야 안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멍청한” 사람이다. 이빨에 방심하다 제대로 당한다.
아... 아프다.
치료 받은 곳이 아픈 것 뿐만 아니라 그곳을 보호하느라 물고 있어야 하는, 앞으로도 적어도 1시간은 더 물고 있어야 하는, 거즈 때문에 이빨이 아프다. 의사 선생님이 “꽉” 물고 있으라 했으니 느슨하게 턱을 쉴 수도 없고...
치과 치료는 정말 더 받고 싶지 않다. 정말.
이를 뽑는지, 이를 갈아 내는지...
마취를 하고 치료를 받으니 뭘 느끼지 못한다. 다만 뭔가 막대기가 들어와 혀 뿌리에 닿으면 구역질이 나서 괴로울 뿐이다. 오늘도 치료를 받으며 3번이나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구역질을 해야하는 나도 고역이지만 그러는 환자를 봐야하는, 그래서 치료 도중에 멈추고 기다려 줘야 하는 의사 선생님도 괴로울 것이다. 환자가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뭔가 도구를 사용해 치료를 받는 과정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기 보다는 내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늘 목에 있는 가래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게 입을 오래 열고 있으면 좀 말라서 아주 괴롭다. 구역질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덕분에 치과 치료를 받을 때마다 확 담배를 끊어 버릴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다만 치료 받고 하루 동안 금연하는 것을 괴로워할 뿐이다.
오늘은 사랑니를 마저 뽑아서 왼쪽 어금니 쪽이 아주 아프다. 점점 더 아파지는 것을 보니 마취가 깨어나는 것 같다. 아침에 깜빡하고(벌써 3번 째 치과 치료라고 이제 방심을 좀 하나 보다) 헥사메딘이라는 마취제가 좀 들어간 가글 액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번 쓰지도 않은 게 한 병이나 있는데 다시 사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입 다물고 견디고 있는데 아주 아파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러길래 평소에 치솔질을 좀 열심히 하는 건데 괜히 사탕 먹고 자고, 초코렛 먹고 자고 그랬다. 누가 말하길 현명한 사람은 들어서 알고, 똑똑한 사람은 보고 알며, 멍청한 사람은 당해야 안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멍청한” 사람이다. 이빨에 방심하다 제대로 당한다.
아... 아프다.
치료 받은 곳이 아픈 것 뿐만 아니라 그곳을 보호하느라 물고 있어야 하는, 앞으로도 적어도 1시간은 더 물고 있어야 하는, 거즈 때문에 이빨이 아프다. 의사 선생님이 “꽉” 물고 있으라 했으니 느슨하게 턱을 쉴 수도 없고...
치과 치료는 정말 더 받고 싶지 않다. 정말.
좋은 것을 좋은 그대로 놔두기.
대학 시절부터 무지하게 많이 간 절이 월정사이다.다른 이유는 별로 없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짝사랑하던 사람이 이 절의 풍경을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나야 부모님 따라서 전국을 여행했었기 때문에 더 좋은 풍경을 찾으라면 찾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짝사랑하던 사람이 좋다고 하니 그냥 덩달아 좋아졌다(물론 짝사랑하던 사람과 월정사에 가기 전에도 난 월정사에 자주 갔었다).
그렇게 별 이유없이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말뚝에도 인사한다”는 식으로 좋아하다보니 어느 덧 내가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물론 이제는 월정사를 다른 눈으로 볼 기회를 줬던 그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친구로서 가끔 연락을 할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애인으로서 보다는 친구로서 더 소중한 녀석이다. 인연은 따로 있다. 정말...).
월정사에 처음 가는 사람과 함께 월정사를 찾아가면 처음 하는 일이 전나무 숲 산책이다. 월정사의 일주문에서 본사가 있는 곳까지 숲이 아주 기분 좋을 정도로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를 걷고 있으면 정말 속세의 고민이 다 풀릴 것 같으니 아무리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가도 이 산책은 포기를 못한다. 포기한 적도 사실 없고.
숲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차분하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준다. 도시에서 만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도 참 좋은데 월정사 전나무 숲 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것은 더 좋다.
특히 한 여름에 나뭇가지 사이로 드문 드문 내려오는 빛을 보며 걷는 기분이란... 정말...
월정사의 사천왕이 계신 곳에 다다르면 바로 앞으로 흐르는, 약간 큰 내를 보게 되는데 4계절 늘 맑은 물이 넘치게 흐른다. 졸졸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는 걸 느끼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오래 전에 학교 친구들과 돈 한푼 가지지 않고 무작정 찾아 갔을 때 그 물에 비치던 달을 본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정말 배가 고파 그 달이 빵이나 밥 사발 쯤으로 보였던 것 같은데... 하하하...
겨울에 눈이 오면 개울엔 얼음이 얼고 그 위에 눈이 쌓이게 된다. 숲에 내리는 눈이 다 그렇듯이 눈 위에 여기 저기 놓인 낙엽 자국 없이 그냥 한가지 하얀 색으로 눈을 볼 수 있는 곳이 이 개울이다. 운동장처럼 시원하게 넓은 곳에 깨끗하게 눈이 깔린 것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주변의 숲에서 동떨어져 깔끔하게 한켜 “깔린” 개울 위의 눈을 보는 것도 괜찮다. 숲에서 보면 약간은 색다른 맛이다.
월정사는 워낙 오래되고 규모도 있고 역사도 오래된 절이라 이렇게 저렇게 건물들이 많은 편이다. 내가 가진 월정사에 대한 첫 기억과 비교하여도 여기 저기 새 건물들이 많아졌다.
돈에 여유가 있어 좋은 건물을 예쁘게 만들어 내는 것도 좋은 일이라 너무 복잡하거나 “거대한” 건물만 아니라면 그냥 저냥 참고 보는 편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월정사의 절 집들은 작진 않아도 너무 커서 압도적이지는 않다. 혼자 가진 바램이라면 주변 숲과 산을 압도하는 건물은 월정사에 들어서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참 슬플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일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일도 월정사엔 있다.
어느 날 월정사에 갔더니 건물과 탑에 조명 시절을 새로 했었다. 밤에 빛이 나는 건물과 탑을 보는 것도 아주 나쁜 일은 아니라서 그냥 참고 있었다.
사실 밤엔 밤 답게 별 빛을 어깨 뒤로 보여주는 기와 지붕을 보는 게 더 좋다. 아주 까만 밤만 아니라면 건물의 실루엣이 밤 하늘의 별과 함께 너무나 좋은 풍경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 나라 기와 지붕은 그 곡선 덕에 밤 하늘을 지나는 작은 구름과 그 사이의 별들을 아주 잘 보여준다. 참 잘 어울리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이 조명이 이상해졌다.탑을 비추는 조명이 색이 들어간 것이다.
대체 어떤 사람의 생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대단히 “창의적” 발상이다.
생뚱맞고 촌스럽기 그지 없는 초록색 등등으로 바뀌는(그렇다! 색이 바뀌기도 한다!) 탑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서울에 있는 건지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전국의 절마다 저런 일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른 절들엔 내가 밤에 가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밤에 가볼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다른 절이 없다.
제발 저 색과 그 색깔 바뀜만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냥 좋았던 것들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젊은 시절 “좋았다”고 느끼던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나 내가 나이 들어서도 그 좋음을 느꼈던 나이를 즐기고 있을 내 후손에게 말해줄 수 있게, 그리고 다시 그 “좋음”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말이다.
(2007년 3월 31일 토요일, 오대산 월정사,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SPP 2.1 for Mac OS)
(2007년 3월 31일 토요일, 오대산 월정사,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SPP 2.1 for Mac OS)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감자 꽃
한 달 전 쯤 다용도 실을 청소하다가 겨울 동안 안 먹고 남겼던 감자에서 싹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중고등학교 시절 실과 시간에 감자에 싹이 나면 독이 생긴다고 배웠던 터라(나름대로 공부는 못해도 성실한 학생이었다. 나름대로는...) 버리려고 따로 꺼냈는데 기왕 싹이 났으니 심어보자고 영리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날 마침 강아지의 미용을 맡기러 나간 김에 화분과 흙을 사왔다. 사실 화분은 그냥 덤으로 얻었다. 흙을 사니 버리려고 하는 화분을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그렇게 그냥 저냥 가져온 화분과 기대없이 사온 흙(퇴비도 들어 있는 흙)을 써서 불성실하기 짝이 없게 싹이 난 감자 3개를 화분에 심어 놓았는데 어느덧 자라 감자 꽃이 피었다.
베란다 구석에 놓고 일주일에 한 두번 물을 줬을 뿐인데 거의 1m 정도를 자라더니 저렇게 꽃이 피었다.
영리나 나나 감자 꽃은 생전 처음 본다.
둘 다 도시에서만 자랐으니 저런 "농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워낙 크게 자라길래 둘이서 "이건 감자 나무야" 이러고 있었는데...
꽃이 생긴 것으로 봐서는 풍매화가 아닌가 싶은데 잘 모르겠다. 아직 동네에 벌이 날아다니지는 않는데... 아무튼 잘 자라는 것을 보니 올 가을엔 집에서 기른 감자를 먹어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가 생긴다.전에 처형께서 주신 화분을 기른 적이 있었다. 사막에서 자라는, 말 그대로 1년에 한 번 물 주면 잘 자라는 식물로 구성된 화분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죽었다. 나름대로 잘 기른답시고 한달에 한 번씩, 그것도 나 한 번, 영리 한 번 이렇게 줘서 썩혀서 죽였다.
아마 살아 있는 것들은 약간 무관심해야 하는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 감자를 심고서는 갑자기 회사 일이 바빠져서 신경을 제대로 못 쓰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잘 자란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감자는 땅 속에서 뿌리에 생기는 것일텐데 어떻게, 왜 꽃이 피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지식의 보고 네이버에 물어봐야 겠다.
심을 때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몰라서 네이버에서 찾아 심었는데...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경기도 용인 죽전 집 베란다, Sigma SD10, Sigma 24-70mm EX DG Macro, SPP 2.1 for Mac OS X, AppleRGB)
2007년 3월 30일 금요일
흐름에 몸을 던져라!

난 매일 아침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한다.
분당의 오리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거의 서서 가게 된다. 간혹 운이 좋으면 내가 서있던 자리 부근의 사람이 일찍 내려서 앉아서 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은 날이고...
아무튼 지하철을 타고 가면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난다. 특히 요즘은 PMP로 영화를 열심히 보는 사람을 많이 본다. 나 역시 근래에 산 iPod Video를 이용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지하철에 있는 시간을 쓴다. 전에 잠깐 동안은 책도 보고 했는데 근래에 죽전 지역에 아파트가 늘어나고, 특히 보정역이 오리역 다음에 새로 생긴 후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책을 꺼내 보기가 좀 불편해졌다. 물론 그 와중에 열심히 신문 펴들고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오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올려 출근을 하면 선릉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게 되는데 분당선의 마지막 역이라 모든 사람이 한 번에 내리게 된다. 수천명의 사람이 한번에 내려 각자 갈 길을 가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잠실 방향으로 갈아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도림 방향으로 갈아 탄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선릉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내려서 자기 갈 길을 가게 되니 그 흐름이 만만하지가 않다.
간혹 지하철에서 내리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지하철 밖의 플랫폼에서 흘러가는 사람들이 너무 빽빽해서 거기에 끼어들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꼭 여름 장마에 불어난 계곡 물을 보는 기분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넘어져 밟힐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 느껴진다.
매일 아침마다 그 흐름의 일부로 살다가 최근에야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흐름이 흐르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속도를 맞추고 함께 걸어가면 서로 서있는 힘과 걸어가는 힘이 서로의 몸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내 의견(내가 갈아타야 하는 방향)은 조금씩 외부로 표출하면서 큰 흐름을 거슬러 가지 않는 방법이 제일 안전한 것이었다.
마치 군대에서 중간 보다 약간만 잘하는 게 제일 안전한 것처럼 그냥 그렇게 말이다.
간혹 열받는 일이 있기도 하긴 하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흐름에 밀려 내가 갈 방향으로 가지 못할 때.
큰 흐름과 내 의지에 반해서 움직이는 앞 사람 때문에 내가 갈아타야 할 열차를 간발의 차이로 지나칠 때.
그런 일이 생기면 참 열받는다. 허허허... 아침부터...
오늘 아침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결국 이렇게 큰 흐름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혹시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멋진" 사람들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사회와 함께 산다는 게 결국 흐름 속에서 자기 자리와 역할을 찾아 간다는 것이라고 배웠다. 내가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흐름에 투신해 그 흐름이 더 잘 흐르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난 잘 모르겠다. 내가 투신한 이 흐름이 "주류"인지.
그리고 어떤 흐름이 주류가 되어 바다로 가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대체 어떤 흐름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지... 그렇게 오래 학교를 다니고 또 사회 생활도 했건만 아직도 모르겠다.
어떤 흐름을 선택해야 하는지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그게 힘들다면 흐름을 선택하는 방법이라도...
오늘 아침에도 난 신도림 방향으로 갈아타는 흐름에 몸을 맡겼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2007년 2월 3일 토요일, 강원도 정선 남면 광덕리에서 가수리 가는 길에서, Sigma SA-9, Sigma 12-24mm EX DG, Ilford Delta 400, Kodak D-76 자가 현상, Konica-Minolta Dimage Scan Dual 4, Adobe Photoshop Lightroom 1.0)
2007년 3월 6일 화요일
거울
난 사실 거울을 거의 보지 않는다.거울을 보며 다듬어야 할 만큼 잘 생기지도 않았고 거울을 보며 정성을 들일 만큼 외모에 신경을 쓰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다른 사람의 시선에 초연한 그 무엇 때문은 절대 아니다. 그저 게으르고 귀찮아서일 뿐이다.
내가 그나마 거울을 보는 시간은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고 있을 때다.
신기하게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다들 거울을 붙여 놓아서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좋던 싫던 거울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 이빨에 낀 고추가루는 없는지 보기도 하고 코털이 삐져나오진 않았는지 점검도 한다. 그나마 요즘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CCTV가 설치되어 잘 안한다.
얼마 전에 경비실에 맡겨진 택배 물건을 찾으러 갔다가 다른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게 경비실 모니터에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똑같은 모습으로 비슷한 일을 하곤 했는데 남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자신을 돌아보고 지나온 시간을 반성해야 사람이 큰다고들 하는데 아마 난 그런 걸 제대로 하고 살지 않아서 사람이 크질 못하는 모양이다.
지난 일들에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돌이켜 실수를 했다면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잘된 일이 있다면 더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할텐데 난 아직 그런 일을 못하고 산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잘한 일"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내가 "이 다음"에 좀 크면 오늘 써놓은 이 글을 읽고 뭐라고 하게 될지 궁금하다.
(2007년 1월 8일 경, 경기 용인 죽전 집 엘리베이터 속에서, Lomo LC-A, Ilford Delta 400, Kodak D-76 자가 현상, Konica Minolta Scan Dual 4, Adobe Lightroom 1.0)
2007년 2월 21일 수요일
형.
나는 맏이라 형이 없다.어릴 때부터 형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들은 무조건 부러웠다. 내 능력 밖의 어떤 일이라도 형이 있으면 다 해결해줄 것 같이 느껴지니까...
아무튼 형이 있는 친구들이 형이랑 뭔가를 하거나 형의 도움을 받거나(특히 싸울 때) 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동생들에게 내가 그런 "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대로 챙겨 준 적도 없고 동생이 동네 친구들과 싸울 때 무조건적인 편을 들어 준 기억도 없는 것 같다. 그냥 나름의 "객관적" 입장만을 보였던 것 같다. 허허허... 이게 무슨 형이라고...
아무튼 내게 없는 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서 그런지 형들과 친해지는 경우가 참 많았다.
대학을 다닐 때도, 대학원을 다닐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그런 것 같다.
늘 내 주변엔 내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PDA를 만든다고 정신 못차리고 일하다가 말아 먹고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나의 게으름과, 꽉 막힘과, 호전적 대화법을 넘어 날 챙겨주고 이끌어 주던 형이 있었다.
그 이전까지 늘 회의는 사장과의 싸움이고 개발은 라면만 먹으며 하던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게 "정상적"인 사회와 조직, 회사에서 일하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내가 잘 견디지 못하고 그 회사를 뛰쳐 나왔다. 지금보다 아주 오래 전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도 생각이나 행동이 너무나 어렸던 것 같다.
그렇게 그 회사를 뛰쳐나와 한 일이 전자 액자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 회사를 나온 후에 나름 바쁘다는 핑계로, 또 이런 저런 사정으로 제대로 연락을 못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몇 년을 정신없이 살며 가끔 그 형을 생각했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가 현재의 위치로 이사오면서 그 형을 다시 만나게 됐다.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내가 몇 년 동안 연락도 없이 살았음에도 그냥 담배 한 개피에 한 번 웃음으로 다 안아 주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부러워하던 "형"들이 그 동생들에게 했던 것처럼.
몇 년 동안 마음 속에 큰 빚으로 남았던 형에 대한 기억을 다시 모두 꺼낼 수 있게 형은 그냥 날 이해해주고 웃어주었다. 바쁘거나 일이 힘들어도 항상 웃어 주었다. 참 고맙다.
아직도 형은 늘 내게 여유와, 이해와, 휴식이다.
이제 나도 형이 있다. 내가 부러워했던 그 친구들처럼...
(2007년 2월 14일 수요일, 서울 구로 구로 디지털 단지 코오롱 사이언스 밸리 2차 3층 정원,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SPP 2.1, Picasa 2.6 세피아 변환 후 필름 효과 추가)
2007년 2월 2일 금요일
고갈비에 막걸리 한 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과 술안주.그래서 이곳에 가끔 간다. 내 제일 친한 친구들 중 한 명도 다행히 이 조합을 참 좋아한다. 나나 그 친구나 둘 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기 때문에 막걸리 빈 병 늘어가는 속도보다 고갈비 접시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 이 친구와 술을 마시면 배가 많이 부르다. 술은 그냥 반주니까.
난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친구들 중에 한 명은 도시에 오면 "고향"에 온 느낌이라서 참 좋다는 녀석도 있는데 난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시간이 참 괴롭다.
자동차 냄새, 시끄러운 음악, 북적거리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내가 도시에 정을 붙이고 살기 힘들게 한다.
하지만 참 웃기는 건 내 고향이 서울이라는 것이다. 허허허...
아무튼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도시 풍경을 잘 찍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이 처다보는 곳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것도 잘 못하고...
그나마 이 날은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청진동으로 걸어가면서 노란 간판이 예뻐보여 사진을 찍었다. 이 날 들고 있던 카메라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로모라서 용기를 냈던 것 같다.
답답한 일이 있으면 고갈비에 막걸리가 간절하다.
두둑하게 부른 배에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에서 고약한 냄새나는 막걸리 트림이라도 하면 참 기분 좋다. 허허허...
요즘 전보다는 좀 더 자주 고갈비에 막걸리가 생각난다.
고갈비에 막걸리 마시던 친구와 시간 한 번 맞춰 봐야겠다.
(2007년 1월 13일 토요일, 서울 종로 피맛골, Lomo LC-A, Ilford Delta 400, Kodak D-76 자가 현상, Konica Minolta Scan Dual 4, Adobe Lightroom 4.1 Beta)
빨리 좀 찍지?
"빨리 좀 찍지?"내가 집사람 사진을 찍을 때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집사람도 여자라 카메라를 들이 대면 나름대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는 표정을 짓고 있는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표정은 늘 그게 아니였다. 그래서 현상하고 스캔해서 사진을 보여주면 "늘" 마음에 들어하질 않는다.
이 사진을 찍을 때도 역시 그랬다.
카메라 들이 대고 그 "예쁜" 표정이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그 예쁜 표정을 유지하면서 "빨리 좀 찍지?" 라고 말하느라 표정이 오묘하다.
역시나 현상, 스캔 후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사진은 표정이 왜 이래?"
그렇지만 나는 안다.
무슨 옷을 입건, 어디에 있건, 어떤 표정을 짓건...
집사람은 예쁘다. 그래서 난 참 행복하다.
(2007년 1월 6일 토요일, 서울 금호동, Lomo LC-A, Ilford Delta 400, Kodak D-76 자가 현상, Konica Minolta Scan Dual 4, Adobe Lightroom 4.1 Beta)
2007년 1월 29일 월요일
장이 끝난 자리
한 동안 사진을 찍으러 강원도에 못 갔더니 몸이 근질 근질해서, 그래서 무작정 떠나서 간 정선.운 좋게도 장이 서는 날이라서 장 구경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원래 2일, 7일이 정선 장날인데 늘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산다.
핑계라면... 다른 기억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
점심 때 도착을 해서 우선 밥을 먹고 장 구경을 하자고 합의를 했고 또 동행한 친구가 얼마 전 정선에서 선지국을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하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배가 고프면 원래 아무 생각 없다. 영리나 나나 다... ㅋㅋㅋ) "그럼 우선 선지국부터 먹자. 배고프다." 이러고 선지국 한 그릇 씩을 먹었는데 배도 고프고 맛도 있고 해서 냉면 그릇만한 선지국 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실수였다. 어흐흑...
장 속에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많은지...
메밀 부침, 족발, 콧등치기 국수, 과자, 올챙이 묵, 녹두전...
동행한 친구는 원래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아 별 갈등이 없어보였지만 영리와 나는 배가 불러 먹어보지 못하는 걸 정말 아쉬워했다.
진짜... 아쉽다. 다음엔 꼭 밥 굶고 가야 겠다고 다짐한다.
특히 시장 한 가운데서 부쳐 파은 녹두전은... 저 멀리서부터 고소한 기름 냄새에 사람 힘을 쪽쪽 빼놓았다. 어흐흑...
뭐, 아무튼 그렇게 침 질질 흘리며 장 구경을 하고 사진 찍고 하다 근처에 경치 좋은 곳을 갔다가 돌아오니 이렇게 장이 파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건 챙기고, 정리하고, 청소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옮기러 온 차들 외엔...
이제 배도 다시 고파졌는데, 이제 다 먹어줄 수 있는데하며 입맛만 다시다 집으로 떠났다.
집으로 떠나기 직전 물론 장터에 있는 식당(분식집?)에서 콧등치기 국수로 저녁을 해결하고 왔지만 역시 아쉽다. 허허허...
떠나오는 길에서 본 장터는 참 쓸쓸했다. 밤이 일찍오는 산촌이라 더 그렇고 해가 지면 추워지는 곳이라 더 길엔 사람이 없었다. 다만 "과연 저 옷이 팔릴까" 생각이 드는 양품점(!)의 창에서 나오는 빛이 있었다. 좁은 인도를 비치는...
(2007년 1월 27일 토요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정선 장터, Sigma SD10, Sigma 12-24mm 4.5-5.6 EX DG, SP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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