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우린 발상이 다르다!

오늘 신문을 보니 올 7월부터 사병들에게 현물로 지급하던 세숫비누와 세탁비누, 치약, 칫솔, 구두약, 면도날 등 6개 품목을 현금을 지급해서 각자 구입하도록 바꾼다는 소식이 있었다.
오래 전에 내가 군 생활을 할 때에도 지급받는 물건들 아끼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좀 짜증나는 사건들(예를 들어 내무반 바닥을 닦을 때 치약을 사용한다던가 하는)이 여럿 있었으니 "국가적인 절약"을 위해서라도 각자 용도에 맞게, 또는 쓰는 양만큼 사서 쓰게 하는 건 생각해볼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내용은 이것들을 각자 사게 하면서 매달 사병 개인에게 지급할 돈이 1386원이라는 것이었다.

달랑 1386원.
그것도 하루치가 아니고 한달에!

군대 매점이 면세라서 가격이 싸다고는 하지만 대체 매일 매일 써야하는 비누, 치약, 칫솔, 구두약 같은 걸 어떻게 1386원에 다 사서 충당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부정하겠지만 그나마 내가 군대에 있을 때보다는 몇 배 오른(그래봐야 한달 내내 삽질 시키고도, 매일 새벽에 별보며 보초서고도 몇 만원일게 뻔하지만, 게다가 뭔가 잘해도, 목숨 걸고 열심히 해도 달랑 휴가 주면 땡인) 사병 월급이 있으니 모자라면 지들이 알아서 쓰겠지라는 생각과 더 필요하면 집에서 달라고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이 계획을 세운 놈 머리에 있을 것이다.
아마 이 계획을 세운 "놈"은 사병이 아니라 간부겠지.
"정상적"인 월급받고 일하는.
그러니 군대에 대량 납품하는 물건의 개인별 소모율을 계산해서 개인당 얼마면 매달 쓰는 이런 물건들을 살 수 있을지 알아냈겠지.

그런데 웃기는 건 가까운 이마트나 좀 멀리 있는 코스트코에만 가도 이게 얼마나 웃기는 계산인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마트나 코스트코에서 물건들을 싸게 파는 이유, 아니 싸게 보이도록 할 수 있는 이유는 묶음 판매를 하기 때문이다.

1개 살 사람에게 "10개 묶어서 사면 9개 가격에 줄게, 이러면 내가 좀 손해보는데..." 이래서 말이다.

이걸 군대 보급품의 관점에서 보면 이전까지는 육군 전체에서 사용할 치약을 육군이 업체에게 "우리 왕창 사는데 할인해줘. 아니면 딴 데 가고." 이래서 싸게 산 건데 그게 안된다는 말이다. 허허허허...
흠...
나라 지키는 데 바빠 장을 보러 간 적이 없어서 모르시나...

게다가 이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곳이 군대 내에서는 충성 마트, 충성 클럽(이름도 참..., 발상이 다르긴 다르다) 같은 곳뿐이다.
"김 병장님, 저 치약 사러 이마트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이러지는 못할테니 말이다.
이런 곳은 당연히 복지근무지원단에서 운영을 한다.
이게 또 웃기는 것이 복지근무지원단이라는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는 "이익 없이" 인데 그렇지가 않다는 거다. 이익 남겨서 다른 데 쓴다고 되어 있다.

네이버 백과 사전(결국 두산 백과 사전)에 따르면...

"충성클럽·마트는 대대, 독립 중대급, 군인 가족 거주 아파트 지역을 대상으로 하며, 쇼핑타운은 군 숙소 단지화 지역, 군 직영 호텔·콘도, 회관, 민간 콘도를 대상으로 한다. 이를 통한 수익금은 복지기금으로 적립하여 복지시설 건립 및 확충, 복지시설 유지·관리, 장비 구입, 장병 사기진작, 군인 및 군무원 자녀 장학사업, 복지시설 운영 등에 활용한다."

라고 한다. 뭐, 보시다시피 좋은 데 쓰겠단다. "장"의 사기 진작에 신경쓰느라 "병"의 사기는 나몰라라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하지만 좋은 데 쓰건 나쁜 데 쓰건 뭐가 남아야 쓸 게 아닌가.
결국 사병들에게 생필품 팔고, 과자 팔고 해서 "좋은 데" 쓰겠다는 건데...

이런데 어떻게 "묶음 판매(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묶음)"로 살 가격을 주고 각자 사라고 하는지...

정말 발상이 다르고, 놀랍고, 창의적이라고 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


뭐, 워낙 미쳐 날뛰는 세상이라 다 좋다.
이렇게 하면 저 위쪽에게 사랑 받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니까 어디 그래봐라.

근데... 이렇게 하면 앞으로 사병은 "파업"해도 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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