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30일 수요일

소나기, 사진, 사기.

 더위에 투덜거릴 때, 후텁지근함에 짜증내고 있을 때 날아온 하늘의 고마운 변덕.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 놓은 것 같은 소리에 놀라 창 밖을 보니 하늘은 먹물을 타놓은 것 같고 비는 자갈처럼 땅을 치고 있었다.

모기장 사이로 들어오는 찬기 먹은 바람이라니...

그 시원함에 낄낄거리며 좋아라했다.

사소한 날씨의 변덕에도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면 사람은 참 작은 모양이다.

이렇게 암울한 분위기의 컴컴한 사진인데 실은 낄낄거리며 행복 속에 찍은 사진이라니...
이래서 사진이 사기인가보다.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경기도 용인 죽전 집에서 본 소나기 오는 죽전 풍경, Sigma SD10, Sigma 12-24mm 2.8 EX DG) Posted by Picasa

특이한, 특별하지 않은, 친근한, 어이없지 않은.

 이 친구, 사이버다임에서 일할 때 만난 친구이다. 친구라고 하면 이 녀석이 어떻게 반응할 지 모르겠는데 나이는 한 6년 정도 차이가 난다. 물론 내가 더 많다.
이 글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특이한 녀석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남자들이 군대에서 만들어 오는 편견이나 악습이 없다.
혼자 노는 것도 참 잘하고(군대 다녀 온 사람은 안다. 2년 남짓한 젊은 시절 동안 철저히 집단으로만 논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습관인지) 뭔가를 하겠다고 생각하면 계획을 세워서 차근 차근 잘하는 편이다(이것 역시 그렇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의 수동적 집단이니 말이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도 말이다.
장난 좋아하고 화 안내고 사람들과 잘 지내고, 농담을 진담처럼 하고...

이 정도 이야기하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알 것이다. 귀여운데 싫어지지는 않는, 건방진데 밉지는 않은, 특별히 같이 뭘 하진 않아도 같이 있으면 재밌는, 그래, 그런 사람이다.

이 녀석과 친하게 된 이유는 2가지이다. 첫째가 담배, 둘째가 사진이다.
요즘 어느 사무실이나 그렇지만 담배를 피우려면 건물 1층으로 가거나 비상 계단으로 가야했는데 당시엔 나도 피우고 이 친구도 피우고(물론 다른 사람들도 많이 폈다) 해서 같이 담배를 피우러 자주 다녔다. 남자던 여자던 담배를 같이 피우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니 당연히 친해진다.

그래서 사진도 함께 찍게 됐다.
이 친구의 사진 찍기는 순전히 내가 바람을 넣은 것이나 다름 없다.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사진 찍기의 즐거움에 대해 참 많이도 이야기를 했다. 그 덕에 이제 자기 카메라도 있고 뭔가를 찍어 남기고 싶어하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처음 만나면 "뭐 이런 사람이 다있나" 싶은 사람이 꼭 있다.
이 친구가 그랬다. 이 친구의 그런 첫 인상 때문에 이 친구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녀석에 대한 반응은 딱 두 가지다.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거나.
난 첫 번째 반응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두 번째인 경우도 있다.

이 친구 덕에 난 첫 인상보다 그 사람 자체를 봐야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이 친구의 첫 인상에 머물렀다면 함께 사진을 찍는 즐거움도, 함께 담배를 피우는 즐거움도, 같이 농담을 하는 즐거움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특이하고 친화력 강하고 의외의 생각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며 차근 차근 준비해 뭔가를 이뤄가는 이 녀석을 "친구"라고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친구의 의외성은 늘 즐겁다.
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 그런 느낌이길 원한다.


(2006년 8월 19일 토요일, 강원도 횡계 구 대관령 휴계소 진입로에서, Sigma SD10, Sigma 70-300mm APO DG Macro) Posted by Picasa

선배 가족과의 갑작스런 여행.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했을 때 민주화 운동 때문에 제적을 당했다가 재입학을 한 선배가 있었다.
처음엔 나이 많은 약간 부담스런 선배였는데 이런 저런 인연으로 친하게 됐었다. 아마 그 당시에 내가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고 힘들어할 때 그 선배가 조언해준 내용들 때문일 것 같다.

그게 계기가 되서, 또 다른 이유들도 있고 해서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그 형의 집에(당시 그 선배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있었다) 얹혀 살았다.
형수님께 이런 저런 폐를 참 많이 끼쳤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죄송하다.

아무튼 그 당시 기저귀를 갈던 아기가 어느새 자라 중학생이 됐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한 동안 보질 못하고 결혼을 해서도 거의 2년 만에 봤으니 참 오랜만에 본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결혼한다고 영리와 함께 찾아 갔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는데...

아무튼 참 오랜만에 만났더니 그냥 중학생이 되어 있어 어색하기도 하고 그렇다.
갑자기 모르던 중학생이 가까운 사람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말이다.

신기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맘에 안들면 울고 기저귀 차고 뛰고 했던 아기가 어느 새 자라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혼자 행동하고 할 수 있게 되다니...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기가 자라 중학생이 됐으니 같은 시간 동안 나도 그 만큼 나이가 먹었을텐데 별로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나이 아무리 많이 먹어도 마음은 똑같다고 하시던 게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나와 영리가 아기를 낳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제대로 아기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2006년 8월 27일 일요일, 강원도 속초 설악산 권금성, Sigma SD10, Sigma 70-300mm 4-5.6 APO DG Macro) Posted by Picasa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오래된, 참 아름다운.

 새로 산 카메라다.

Jhagee Exakta Varex VX.
Carl Zeiss Jena Tessar 2.8/50.

실용성이랑 큰 상관없이 무진장 갖고 싶었던 카메라다.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지.

지난 겨울에 사진 동호회에서 알게 된 분이 쓰시는 걸 보고 디자인에 반해 구하고 싶어 하다가 결국 얼마 전에야 쓸 수 있을 지 없을 지 알 수 없는 eBay 매물에 입찰을 했다.
결국 운좋게 낙찰받아 받은 물건인데 그럭 저럭 상태가 좋아보여 맘에 든다(나중에 알고 보니 평균보다 좀 비싸게 입찰한 것 같아 진짜로 운이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사진 속의 카메라는 2번째로 받은 물건이다. 처음 온 물건은 Seller가 포장을 제대로 하지 않아 여기 저기가 찌그러져 있었다. 그래서 안되는 영어로 Seller와 싸우다 송료를 부담하고 1대를 다시 받은 놈이다.
그 덕에 여기 저기 찌그러진 이른바 "전투용" 바디가 하나 더 있다. 그 놈도 쓰려면 어디선가 수리를 해야할 모양인데 어디에 맡겨야 할 지 모르겠다.
내게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어 힘들게 온 카메라들은 나중에 헤어지기도 힘들던데 이놈도 그럴 모양이다.

적어도 40년은 됐을 카메라인데 아직도 반짝 반짝한다.
물건을 만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 주말엔 이 카메라에 Agfa CT Precisa 100을 끼워서 사진을 좀 찍어봐야 겠다.
노출계가 없는 카메라라서 노출 설정에 민감한 슬라이드 필름을 쓰는 게 좀 모험이긴 한데 그래도 한 번 써보고 싶다. 내 "뇌출계"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모험해봐야겠다.

처음 써보는 독일제 렌즈인데 어떤 색을 보여줄지 많이 기대된다.
동독제이긴하지만 그래도 그 유명한 Tessar 렌즈인데 어떤 색으로 날 감동시킬지...

주말엔 날씨가 좀 좋아야 할텐데...


(2006년 8월 23일 수요일, 경기도 용인 죽전 집 내 책상,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2006년 8월 23일 수요일, 경기도 용인 죽전 집 내 책상,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Posted by Picasa

2006년 8월 23일 수요일

빨강, 또 파랑.

 사진을 찍다보면 이유 없이 어떤 색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내 경우 빨강과 파랑이 그렇다. 빨강과 파랑이 잘 나오는 필름이나 렌즈를 들으면 꼭 써보고 싶다.
헤이리에서 본 빨강과 파랑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저렇게 예쁜 빨강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필름이 좋은 것이라 그런지 빨강이 아주 예쁘게 나왔다.
 주변이 약간 어두워지면서 파랑이 잘 나왔다. Sigma SD10도 파랑이라면 아주 끝내주는데 이 필름도 파랑이 아주 좋다. 평소에 사용하는 필름에 비해 2배나 비싼 필름이라 좀 부담이 됐는데 결국 카메라에 끼우고 나면 1000원짜리 필름이나 7000원짜리 필름이나 막 눌러대는 건 똑같다.

빨강은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색이다. 길을 걷다가도 빨간 색 차나 옷을 보면 잠깐 넋을 놓고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빨간 색 립스틱이나 메니큐어를 보면...

파랑은 사진을 좋아하게된 다음부터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사진에 나오는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라 진짜 파랑이다. 이런 색을 보면 그냥 밖으로 나가고 싶다. 어서 나와서 하늘을 보고 웃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파랑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2006년 8월 12일 토요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딸기가 좋아, Sigma SA-9, Kodak E100G, Konica Minolta Scan Dual 4)
(2006년 8월 12일 토요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Sigma SA-9, Kodak E100G, Konica Minolta Scan Dual 4) Posted by Picasa

2006년 8월 14일 월요일

술 취한 날, 혼자 술에 취한 날.

얼마 전에 술에 취해 종로에서 남산까지 헤메고 다닌 일이 있다.

낮에 회사에서 내 능력의 한계를 너무 크게 절감하고 낙담하고 있는데 저녁에 술을 먹기로 한 약속은 펑크나고 만나자고 전화한 친구는 바쁘다고 하고...

마지막엔 집사람마저 약속이 있어 함께 있질 못했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국 혼자 술을 먹었다. 하긴 술 먹고 싶은데 무슨 핑계가 필요할까 싶긴 하지만...
예전엔 혼자 술을 먹은 적이 참 많았는데 결혼을 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늘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것, 늘 든든한 빽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다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친구없는 왕따같다. 사실 왕따까지는 아닌데... 친구들 중 다수가 해외에 살고 있다뿐이지.

종로를 헤메고 다니다 결국 고른 곳은 매운 족발을 파는 집이었다. 썰렁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제일 매운 족발을 시켰는데 먹느라 고생 좀 했다.

게다가 에어콘은 어찌나 세게 나오던지...

술을 먹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어찌 보면 술을 먹지 않고 찍은 사진보다 이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집사람이 함께 집에 가자고 해서 종로에서 남산까지 아내를 만나기 위해 걸어가며 남긴 사진이 있어서 이거 하나는 건진 것 같다.

슬픈 날, 술 먹고, 혼자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은 너무 슬프다.


무척 힘들고 슬픈 날이었는데 지나고 나니 술 안주의 맛만 기억난다. 이런 기억이 더 남는 걸 보면 아직도 어린 모양이다.


(2006년 7월 19일 수요일, 매운 족발집 내 술상, Nikon FM2, Nikon Nikkor MF 28mm 3.5, TMax 100 / 36 Exp., Konica Minolta Scan Dual 4)
(2006년 7월 19일 수요일, 백병원 앞에서 본 남산, Nikon FM2, Nikon Nikkor MF 50mm 1.2, TMax 100 / 36 Exp., Konica Minolta Scan Dual 4)
(2006년 7월 19일 수요일, 서울 유스호스텔 앞 굴다리, Nikon FM2, Nikon Nikkor MF 50mm 1.2, TMax 100 / 36 Exp., Konica Minolta Scan Dual 4)
(2006년 7월 19일 수요일, 서울 에니메이션 센터 주차장, Nikon FM2, Nikon Nikkor MF 50mm 1.2, TMax 100 / 36 Exp., Konica Minolta Scan Dual 4) Posted by Picasa

살아 남기

동호회 분들과 헤이리를 다녀왔다.

관광 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경기도가 노력하는 곳인 것 같은데 예쁜 집들과 여러 갤러리, 카페 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사진을 찍을 것도 많은 곳이다. 그 덕에 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참 많다.

SLR을 들고 있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마추치면 좀 주눅이 든다. 내 사진에 자신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게다 상대방이 좋고 비싼 렌즈, 흔히 대포라고 하는, 라도 들고 있다면 이런 주눅은 더 커지고 급기야 내 카메라를 가리는 일도 한다. 하하하하...

물론 상대방도 거의 비슷한 걸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서로 쑥스러워하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카메라를 들고 좋은 사진을 찍으며 살아 남으려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난 아직 멀었나보다. 아직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누가 쳐다 보면 카메라를 가방에 넣거나 그곳을 빨리 지나친다.

얼마 전에 혼자 술을 먹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술에 취해 찍은 사진이 더 느낌이 좋다. 아마 술 덕에 쑥스러움을 덜 느껴서 그런 모양이다.
평소 낯을 가리거나하지는 않는데 사진에 대해서는 그게 잘 안된다.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게 참 웃기는 일이다.
결과물이 좋아져야 자신감이 생길텐데 자신감이 없으니 좋은 장면에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대질 못하고 그렇게 찍어대질 못하니 결과물이 좋아지질 않는다.
잘못 만들어진 프로그램 처럼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다. 그러니 남겨 놓을만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헤이리에서 찍은 사진들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서 거미들에게 긴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었다.
구도도 그렇고 배경이 된 하늘의 구름도 그렇고 다 마음에 든다.
배경의 구름을 어떻게 처리할지, 오른 쪽의 기둥을 어떻게 나타낼지 고민하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렇게 집중할 수 있어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많이 버리고 남은, 살아 남은 사진이다.

거미들이 살아 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먹이가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먹이를 잡아 먹어야만 살아 남는다는 것만을 안다. 그리고 그게 잔인하다는 것만 안다.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희생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죽어야 하니 이걸 보고 잔인하다고 말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인 것 같다.

우리 나라처럼 경쟁이 심각한 나라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다.
단지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남들을 "이겨야"하니 말이다. 다 같이 열심히 노력하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회는 꿈 속에서나 있을 것 같고 현실에선 무한히 싸워가며 살아 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들이야 살던 말던 상관 없이.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는 "먹이"로 삼아야 하는 이 악순환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그 "먹이"가 되는 것도 싫다.

난 그냥 나니까.
오늘도 살아 남기위해 노력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먹이"를 잡아 먹으면서...


(2006년 8월 12일 토요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Sigma SD10, Sigma 70-300mm 4-5.6 APO DG Macro) Posted by Picasa

2006년 8월 7일 월요일

익숙한 것, 변화하는 것.

오래 전부터 다니던 양평의 까페가 하나 있다.

내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다녔으니 이제 얼추 8년은 족히 된 모양이다.

원래 화가이던 분이 운영하시던 곳인데 이제 그 분은 계시지 않는다.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면 실은 내가 사회로 나와 이런 저런 모험을 하던 시기와 맡 물리는 시기라 내가 고민하거나 열광하거나 또는 사랑하던 사건들에 이 까페가 꼭 등장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혼자 가서 종일 있었던 적도 있고 좋아하던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종일 머므르기도 했다.

친한 친구와 회사를 한다고 했다가 말아먹으며 둘이 술을 마시며 한탄을 하던 곳도 이 까페였다.

제일 많았던 사건은 역시 연애와 관련된 사건들인데 누굴 좋아하게 되면 이 곳에 꼭 데리고 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집사람에게 처음 좋아한다는 말을 한 곳도 이곳이다.

한마디로 내겐 참 특별한 곳이다.

쭉 처음부터 뵜던 화가 아저씨가 운영을 하셨는데 어느 시기엔가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약간의 변화도 생겼고...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조금 세련된 장식도 생기고 멍석이 깔리던 야외는 잘 만들어진 지붕에 깔끔한 장판도 깔렸다.
더 편해진 것인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아주 편한 건 아니였다.
그 변화를 거부할 수 없으니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찾아 간다. 그래도 그 장소가 가진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맛있는 음식, 괜찮은 안주에 술 한잔이 사람과 사람을 얼마나 금방 친해지게 하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이야기하는 일들이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 주니 말이다.

어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곳에서 식사를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직접 아는 사람도, 이해 관계가 얽힌 사람도, 꼭 친해져야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선의를 가진 사람과 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알 기회가 마련된다는 건 늘 기분 좋은 일이다.
마치 청소를 금방 끝낸 후 찾아오는 후련함과 피곤함 같은...

익숙한 메뉴에 크게 바뀌지 않는 맛을 열정이 있던 시절 즐겁게 들었던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참 좋다.
그리고 그 곳에 함께 갈 새로운 사람들이 있어서 참 좋다.


(2006년 8월 6일 일요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2리 Yesterday,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Posted by Picasa

2006년 8월 4일 금요일

휴가 속의 여행 중에(5/5)

 기분 좋은 국도 드라이브를 계속하며 느끼는 즐거움엔 아무 곳에서나 차를 쉬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있다.
고속도로 처럼 길 가에 차를 세운다고 뭐라고 하는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복잡한 국도에선 고속도로나 별반 차이 없긴 하지만) 차가 많이 다녀 머리 아픈 매연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선 동광 식당의 멋진 족발을 열어 놓고 저런 풍경을 눈에 담으며 저녁을 먹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시원한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역시 기분 좋은 서늘함은 산 속에서 만나는 바람이 최고다.
에어컨으로는 도저히 만들지 못하는 "기분 좋은" 서늘함이라니...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모시고(또는 얹혀서) 여행을 다니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렸다.
앞으로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서 부모님 모시고 다니는 여행을 더 많이 해야겠다.


(2006년 8월 1일 화요일, 강원도 정선 두문동재 구 도로 넘어 태백 쪽 함백산, Sigma SD10, Sigma 70-300mm 4-5.6 APO DG Macro) Posted by Picasa

휴가 속의 여행 중에(4/5)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면 좋은 점이 참 많다. 그 중에 으뜸을 꼽자면 뭐니 뭐니해도 역시 내가 잘 모르는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많이 여행을 다닌다고 해도 몇 십년을 답사 다니신 아버지, 어머니의 지리 지식을 따라잡기는 영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와 고고학을 전공하신 분들을 어떻게 따라잡는다는 말인가...

 이 정암사 역시 그 동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그 앞을 지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원랜드를 거쳐 삼척, 동해로 넘어가는 두문동재를 한 두 번 넘은 것이 아니니 아마 못해도 10번은 그 앞을 지났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 정암사라는 절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라는 것도 몰랐다.

그러니 들어가 볼 생각은 아예 그 싹부터 생기질 않았다.

 운 좋게도 이번 여행에선 부모님을 따라다닌 덕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의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에 아직은 아담한 절 집이 놓여 있어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개발하는 모양이나 공간으로 봐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시장같은 시끄럽고 웅장한 절이 될 모양이니 그렇게 되기 전에 본 것으로도 참 기쁜 일이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좋은 것을 그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멋진 건물 짓는 일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지 알 수 없으니 당장은 그 사람들이 바라는 "멋진"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에 부지런히 다니며 눈에 넣어야 할 모양이다.

그래야 다니며 예전을 떠올릴 사진이라도 남기지 싶다.



(2006년 8월 1일 화요일, 강원도 정선 함백산 정암사, Sigma SD10, Sigma 70-300mm 4-5.6 APO DG Macro) Posted by Picasa

휴가 속의 여행 중에(3/5)

  사진 찍기 중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 중엔 이런 것도 있다.
이 사진은 집사람이 파인더를 들여다 보지도 않고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셔터를 눌러 찍은 것이다.
저 새들의 정체는 공기가 아주 맑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까마귀이다. 서울에서 보는 지저분한 비둘기가 아니다.

의외로 괜찮은 사진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만들어지면 기쁨은 두배 이상이다.

그러나... 집사람이 이런 사진을 찍은 후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사진 찍는 나에게 "잘 찍지도 못하면서 폼만 잡는다"고 할 때처럼 힘이 빠질 때도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지 뭐. 허허허허...

이 글을 본 집사람이 수정하라고 한다. "요즘은 사진도 잘 찍고 말도 잘한다고 칭찬한다고" 쓰란다.
허허허허허. 영리야, 썼다.


(2006년 8월 1일 화요일,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앞 도로 변,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Posted by Picasa

휴가 속의 여행 중에(2/5)

진부에서 정선으로 가는 국도를 가다보면 "황당한" 폭포를 하나 만나게 된다.
실제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 쪽에서 보기에 산 꼭대기에서 그냥 폭포로 산 아래까지 물이 떨어지는 곳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저 높은 곳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물이 계속 떨어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매 여행 때 마다, 진부에서 정선을 갈 때나 정선에서 진부로 갈 때 늘 들러서 쉬는 곳이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끄럽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 듣기 좋기 때문이다.

백석 폭포 앞에 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도라지 밭이다. 사진에(사진기 말고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된 것이다.
전 같으면 그냥 심드렁하게 지났을 꽃이고 잠자리인데 렌즈를 통해 보면 사람 손으로는 만들지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런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은, 그리고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행복이다.

사진 찍기의 즐거움 중 또 하나는 그리 비싸지 않은 렌즈가 의외의 결과물을 뽑아 줄 때도 느낄 수 있다.
이 사진들을 보면 최고급 렌즈로 찍은 것이 아닌데 의외로 아주 좋은 사진을 보여준다.
매일 좋은 렌즈를 사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살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렌즈의 성능도 다 못 쓰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래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사진 찍기의 또 다른 즐거움에 새로운 장비를 써보며 그 "손맛"을 느끼는 것도 들어간다는 것을...
어쩌겠는가.
저 꽃밭에 꽃들처럼 세상엔 써보고 싶은 사진 장비들이 널려있는 것을 말이다.

하하하하.
집사람이 알면 경을 칠 이야기다.


(2006년 8월 1일 강원도 정선 백석 폭포 Sigma SD10 Tamron SP 17mm 3.5)
(2006년 8월 1일 강원도 정선 백석 폭포 앞 도라지 밭 Sigma SD10 Sigma 70-300 4-5.6 APO DG Macro)
(2006년 8월 1일 강원도 정선 백석 폭포 앞 도라지 밭 Sigma SD10 Sigma 70-300 4-5.6 APO DG Macro)
(2006년 8월 1일 강원도 정선 백석 폭포 앞 도라지 밭 Sigma SD10 Sigma 70-300 4-5.6 APO DG Mac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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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속의 여행 중에(1/5)

직장 생활 중 처음으로 "제대로" 일주일을 쉬는 휴가를 냈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일주일을 제대로 다 쉬는 휴가를 낸 적이 없으니 이번 휴가는 참 여러 모로 기대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되고 나니 뭐가 다른 지 모르겠다. 오히려 길다는 핑계로 짧은 휴가 때보다 더 나태하게 지내고 있다.
이런, 이런.
그러다 보니 길다고 생각했던 휴가도 다 지나가고...

휴가 중 어딘가를 다녀온 여행이 달랑 이거 하나이다.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진부, 정선, 태백을 다녀왔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그냥 드라이브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어설픈 여행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공기 좋은 곳을 다녀왔다.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예전엔(한 7~8년 쯤 전엔) 이끼 사진 찍는 걸 많이 좋아했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이 없어 이끼를 보면 그냥 셔터 버튼만 눌러대는 그런 상태였으니 제대로 이끼를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끼를 찍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과 이끼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좋았던 때였다.
그 때에 비하면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나 사진에 대한 지식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는데 그 때 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셔터 버튼을 누르는 자유는 없다.

뭔가 조심하고, 생각하고, 계산해야만 셔터를 한번 누르니 이게 행복을 위한 버튼인지 고민을 위한 버튼인지 모를 지경이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무식하면 행복하다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는 것 같다.

무식하고, 단순하고, 용감하고, 유치했던 그 때의 사진 생활이 더 행복했다.

사진은 영 아니였더라도 말이다.
물론 지금 찍는 사진이 영 아니지 않다는 건 또 아니지만...


(2006년 8월 1일 화요일, 강원도 진부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Posted by Pic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