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30일 목요일

엉망진창, 너저분.

 
 
요즘 내 정신이 딱 이렇다.
꺼내놓은 것은 많은데 어느 하나 제대로 세팅해서 사용하고 있질 못하다.
전체적으로 엉망인 인상에 너저분한 분위기로 집중도 잘 안된다.

한 번에 3가지 업무를 진행하려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제도 내가 미리 미리 신경을 써서 챙겼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문제가 일어났다.
원래 문제를 잘 일으키지 않는 성격인데...

머리가 세갈래로 갈라져서 각자 노는 느낌인데 이걸 어떻게 정리할지 모르겠다. 잘못 정리하면 그냥 갈라져서 다시는 모일 것 같지 않은데 걱정이다.

그냥 갈라져서 다시 안모이면 그게 아마 "정신 분열증"일 것 같은데...
그런 상태가 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은 한데 그렇게 되긴 싫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누가 알려주면 좋으련만...
내가 원래 단순 반복 작업이나 남이 시킨 일, 생각이 필요 없는 일 이런 거 잘하는데 말이지.

한 번에 하나씩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회사에 그럴 자원이 없다. 인력도 모자라고 돈도 없고 시간도 부족하다.
그러니 맨날 직원들만 힘들게, 힘들게 일하고... 삽질하고...

아... 진짜 피곤하다.


(2006년 11월 15일 수요일, 경기도 용인시 죽전 집 내 책상, Nikon FM2, Tamron Adapt-All 2 24mm 2.5, Agfa CT Precisa 100 / 36 Exp., Konica Minolta Dimage Scan Dual 4, Adobe Lightroom 4.1 Beta 크기 조정)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29일 수요일

오래 두고 사귈 벗.

 얼마 전 내 생일이 지나갔다.
내겐 생일이라고 해봐야 특별할 것 없는 날인데 주변이 오히려 더 많이 축하해주신다.
특히 아버지, 어머니께서 그러신다. 오히려 날 태어나게 해주신 걸 감사드려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더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다.
이번 생일엔 특별한 선물이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사주신 Meopta Flexaret VII라는 카메라이다.
옆에 보이는 이 카메라인데 내가 태어난 1971년에 생산이 중단된 카메라이다.

그러니까 이 카메라가 생산 중단되면서 내가 태어난 것으로 보면 나름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체코 슬로바키아 시절에 만들어진 카메라인데 이 체코 슬로바키아가 이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갈라진 후라 같은 나라가 아니다. 내가 가진 카메라는 eBay를 통해 슬로바키아에 있는 판매자에게 구입한 것이다.

물론 돈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주셨고 구입은 내가 했다.
원래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필름을 사서 원없이 찍어보라고 하셨는데 부모님께서 주신 "소중한" 돈을 그냥 소모할 필름을 사는데 쓰기가 좀 머뭇거려져서 고심하다가 오래 두고 쓸만한, 오래두고 써도 고장나지 않을만한 카메라를 골랐다.
2주 전 쯤, 내 생일이 지난 후에 주문했던 것을 지난 주에 받았다.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 조바심치며 많이 기다렸다.

체코 슬로바키아가 원래 전통적으로 기계 공업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서 그런지 카메라는 마음에 들게 튼튼했다. 러시아를 포함해 동구권에서 만든 카메라는 그리 정밀하지 못한 편이라 좀 불안했는데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만하다.
전체적으로 정밀하고 마무리도 좋은 편이다.

개인적인 의미(부모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과 내가 태어난 해에 생산 중단된 모델이라는 점)가 있어서 앞으로 오랫동안 가지고 사용할 것 같다. 노출계도 없는 모델이라 특별히 고장날 곳도 없고 고장이 난다고 해도 쉽게 수리가 가능할 것 같다.

오래 오래 사용하고 싶다.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마음에 든다.
앞으로 더 많이 찍어봐야겠지만 싱글 코팅 렌즈라 그런지 흑백에 더 좋을 것 같다.

이제 중형도 정리를 할 시기인가 보다.
그래봐야 달랑 두 대지만 그래서 더 늘기 전에 정리를 해야할 필요가 느껴진다.
 본가에 갔다가 베란다에서 말라가는 화분을 찍었다.
흑백 필름이라 관용도가 좋아서 그런지 약간 맛이 간 노출계로 노출값을 측정했는데도 사진이 봐줄만 하다.

이제 내 사진 실력만 늘리면 된다.

허허허허... 내 사진 실력만 문제다.



(eBay.com의 판매자 Cupog Collectible Cameras의 사진, Copyright (C) 2006 Cupog Collectible Cameras)
(2006년 11월 25일 토요일, 서울 충무로 영락 교회에서, Meopta Flexaret VII, Belar 80mm 3.5, Ilford Delta 100 Professional / 12 Exp., CuFic Normal Film Scan, Adobe Lightroom 4.1 Beta 조정 / 흑백 변환 / 크기 변환)
(2006년 11월 26일 일요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 본가 베란다, Meopta Flexaret VII, Belar 80mm 3.5, Ilford Delta 100 Professional / 12 Exp., CuFic Normal Film Scan, Adobe Lightroom 4.1 Beta 조정 / 흑백 변환 / 크기 변환)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27일 월요일

사진 찍는 친구를 둔다는 건...

 사진 찍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도 찍는 대상이 다르다.
내가 이 사진을 찍는 동안 사진 속의 친구가 찍은 사진이 아래 쪽 사진이다.
새벽 햇살과 잘 어울리는 푸르스름한 그늘이 마음에 든다.
우연히 친구가 입고 있던 옷 역시 파란 색 계열이라 더 그렇다.

 물론 이 친구가 이렇게 전선들만 찍는 건 아니다. 산이나 물이나 다른 풍경들도 충분히 잘 찍고 많이 찍는데 이 순간은 이렇게 머리 위로 지나가던 고압선을 찍었다.
난 원래 하늘로 지나가는 전선을 무척이나 싫어해서여간해서는 프레임 속에 전선을 넣지 않았다. 사실 전선이 잘라 내는 하늘을 잘 담을 자신이 없기도 하다.
아무튼 이 친구가 고압선을 찍을 생각을 한 덕에 난 이 친구의 뒷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 친구가 있어 즐겁고 기쁜 일이 많아진 건 참 좋은 일이다.
같은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배우고 놀라며 즐거워한다.
특히나 이 친구는 사진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진에 대한 시각과 지식이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덕에 요즘 배움의 기쁨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공통의 관심사, 비슷한 취향, 거의 같은 시각.
이런 것들을 알아가며 형제같은 친구를 얻는 게 뭔지 알아간다.
딱히 "사진"이 있어, 또는 사진 때문에 "형제"같은 친구를 얻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럴 기회가 "사진"인 것은 분명하다.
사진에게, 사진기에게 고맙다.

이래 저래 사진 찍는 일의 즐거움은 커진다.

기쁘다.


(2006년 11월 18일 토요일, 강원도 평창에서 정선으로 가는 길 가 철길에서, Nikon FM2, Nikon Zoom-Nikkor 28-85mm 3.5-4.5, Agfa CT Precisa 100 / 36 Exp., CuFic 현상, Konica Minolta Dimage Scan Dual 4, Adobe Lightroom 4.1 Beta 크기 조정)
(2006년 11월 18일 토요일, 강원도 평창에서 정선으로 가는 길 가 철길에서, Canon EOS 20D, Canon 24-70mm 2.8 L, Adobe Lightroom 4.1 Beta 크기 조정, Copyright (C) 2006 Hong Lee)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20일 월요일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가을에게 겨울이 갑자기 찾아온 모양이다.
가을 꽃이 예쁘게 피었던 것 같은데 그대로 그 자리에 시들어버렸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말랐다면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며 다 떨어졌을 것 같은데 저리 남아 있다.
아마 어느날 아침 갑자기 찾아온 겨울에 깜짝 놀랐나보다.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기면 몸이 굳는다. 겁이 나서도, 긴장을 해서도 아닌데 머리 속을 정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서인지 몸이 굳는다.
급한 일이 생기면 더 빨리 반응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하는데 급한 일, 갑작스런 일이 생기면 그냥 굳는다.

늘 어떤 불안함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언제 날 얼게 만들 일이 생길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늘 잘 만들어진 준비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느껴야 하는 것인 모양이다.

이 땅에 살며 예상하지 못한 어떤 일을 준비한다는 건... 다 돈을 준비한다는 소리인데 여유있게 돈을 쌓아두고 살지 못하니 그냥 불안한 모양이다.

불안하지 않게, 몸이 얼어버리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다.

몸이 얼어버리는 일은 저 꽃처럼 딱 한 번만 겪었으면 좋겠다.

(분양받은 아파트의 중도금을 넣었다. 대출받는 시기를 늦추기 위해 이번까지는 어떻게 하든 돈을 긁어 모아 냈는데 그러고 나니 모든 은행 통장이 다 "0"이다. 불안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6년 11월 18일 토요일, 강원도 사북 함백산 구도로, Sigma SD10, Sigma 70-300mm APO DG Macro, Adobe Lightroom 4.1 Beta)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빛 좋은 날 아무도 오지 않는 기차역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기차역이다. 역무원도 없고 벽에 붙은 시간표를 보면 하루에 딱 2번 기차가 설 뿐이다.
선로에 서서 앞뒤를 살펴봐도 기차가 정말 다니는지 알 수 없다.
언젠가는 여러 사람들이 타고 내렸던 곳일텐데 지금은 이렇게 빛좋은 날에도 창고처럼 박스들이 쌓여있을뿐이다.
아무도 떠나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역엔 저렇게 빛들만이 잔치를 벌인다.

친구들과 특별히 어딜 가겠다고 정하지 않고 그저 "정선"에 가보자고 떠난 여행에서 들렀다.
정선에서 사북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별어곡"이라는 역인데 이름이 특별해서인지 가끔 그 앞을 지날 때 목적없이 들러보는 곳이다.
사북, 태백에서 석탄이 많이 나던 시절엔 이 기차역을 지나던 기차가 많았을 것 같다.
지금은 기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역 바로 뒤에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나마 시행사의 부도로 건설사가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뚱맞은 팻말이 서있다.

강원랜드 앞에 가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밤이 되도 불이 꺼지질 않는데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고 그런 것을 만든 그 "지역"은 이렇게 조용하다.
누가 누구를 위해 준비한 잔치판인지 모르겠다.

언제 시간을 내서 종일 이 역에 머물러 보고 싶다.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 싶다.


(2006년 11월 18일 토요일, 강원도 정선 사북 별어곡역에서, Sigma SD10, Sigma 50mm 2.8 EX DG Macro, Adobe Lightroom 4.1 Beta) Posted by Picasa

겨울 시작!

 오랜만에 정선엘 다녀왔다. 정선쪽 동강을 일주하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겨울이 온 모양이다.

요즘 아침에 출근하며 춥다 춥다했는데 이게 겨울의 시작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겨울이라면 뭔가 삭막한 분위기의 나무들이 보여야 하는데 여의도 공원의 나무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푸른 것들도 있고 대부분은 아직도 가을 색이다.
그래서인지 춥다고만 생각했지 이제 겨울이 시작됐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동강에 가니 그곳은 겨울이었다.

가을 동안 떨어진 낙엽 위로 저렇게 차갑게 보이는 서리가 앉아있다.

시간은 내가 모르는 사이 부지런하게도 달렸나보다.


(2006년 11월 18일 토요일, 강원도 정선 가수리 동강 변,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Adobe Lightroom 4.1 Beta)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어떻게 볼지는 내가 정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변화 없는 사물을 어떻게 볼지는 보는 사람이 정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 덕에 내가 본 시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단으로서 사진이 아주 효용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동호회 게시판에 수없이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가끔 심각하고 숙연(!)하게 만들어주는 글들이 있는데 그런 글들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폭력이다"


내 웃기는 기억력으로 판단하건데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요지는 그랬다.
내 관점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참 정확한 말인 것 같다.

 변할리 없는 풍경에서 달랑 네모난 부분을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고 해서 거짓 아닌 거짓을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다.
부분 부분들이 서로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지를 묵묵히 짐작해서 네모 속에 잘라서 보여주는 것.
그게 사진이다.

혹은 이렇게도 말한다.

"넓고 특별하지 않은 풍경에서 작고 특별한 장면을 꺼내는 것이 사진이다"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말은 워낙 많아서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내 '이미지 위주 기억' 체계에서 '문장'의 출처를 찾아낸다는 것은 멸치 박스에서 꼴뚜기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 (멸치 박스에서 찾은 꼴뚜기가 맛이 있긴 하다)

아무튼, 사진에 대해 다들 나름의 생각을 가진 모양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제일 동의하는 의견은 첫 번째로 말했던 폭력이라는 말이다.
찍히는 사물에게 폭력일 뿐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도 일변 폭력적이다. 사진을 만들어낸 사람의 관점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강요하기 때문이다.
파주에서 찍어 온 이 사진들도 사실 마지막 사진이 보여주는 풍경의 일부들이다. 그러나 서로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내가 정한 관점에 따라,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강요당한 관점'을 수용당한다.
주먹으로 치는 것만 폭력이라고 보진 않을 것이다. 이런 강요, 예외없이 적용되는 규정들, 무관심한 일처리... 다 폭력적이다.
세상이 워낙 폭력적이라 사진의 폭력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르기 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 특권을 잘 향유하다가 어느 순간 그 풍경에 칼을 대는 것. 그게 사진찍기다.

어쩌면 내가 사진을 찍으며 내 고민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세상이 내게 준 폭력적 상황을 그대로 되갚아 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볼지에 대해 내가 정한 규칙대로 만들어낸 사진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을 한다.
내가 본 것을 똑같이 보라고 강요한다.

난 폭력적인 사진을 찍는다.


(2006년 11월 12일 일요일, 경기도 파주 평화 누리, Kiev-6c, Vega-12B 90mm 2.8, Ilford Pan F 50 / 12 Exp., CuFic Normal Film Scan, Adobe Photoshop CS2에서 먼지 제거, Adobe Lightroom 4.1 Beta에서 크기 변환)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13일 월요일

내 마음에 비친 세상.

 심란하다.
맑게 세상을 보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것들이 그 위로 지난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또 주변 사람들의 회사 생활(특별히 "회사"라고 하지 않더라도 돈 받고 나가 일하는 모든 곳의 생활!)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다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일과 관련되어 만나면 원수만큼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이 생각한다.
어떤 만화에서 "착하게 사는 것은 쉽지만 바르게 사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나오던데 딱 그말이 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만나 취미를 이야기하거나 술을 함께 마시면 다 좋고 착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업무와 입장의 차이로 인해 정말 옳은 일만 하고 있는지는 참... 모르겠다.

누군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보기에 나 역시도 바르지 않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맑게 세상과 사람들을 비치고 있던 마음 속에 낙엽들이 떠다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낙엽들도 물을 흐리기 전까지 참 예쁜 낙엽이었는데...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경기도 양평 유명산 일주 도로 중 공군 부대 입구 부근, Zeiss Ikon Contaflex Super BC, Carl Zeiss Tessar 50mm 2.8, Kodak TMax 400 / 36 Exp., Konica Minolta Dimage Scan Dual 4에서 컬러 네가티브 스캔, Adobe Lightroom 4.1 Beta에서 흑백 변환) Posted by Picasa

여길 지나면 밝아질까?

 간혹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 사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옆을 보지도 못하는 이런 곳을 철퍽거리며 쭉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저 끝도 보이고 그 끝이 밝기도 한데 밝은 덕에 뭐가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

저기까지 가면 정말 밝기는 한걸까?
저기에 가면 정말 넓은 세상이 있긴 한걸까?
저기에 가면...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저기에 꼭 가야하고 그것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지금 여긴 뭘까?
여긴 그냥 지나야 하는 곳인가?
그냥 빨리 지나는 게 좋은 곳일까?

누가 답을 말해주면 좋을텐데...
먼저 여길 지나 저기에 간 사람들의 모습은 저기가 너무 밝아 보이질 않으니 대화할 수 없는데...
내가 저기에 닿으면 난 내 뒤에 오는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서 와서 함께 행복해지자고...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경기도 양평 유명산 일주 도로에서, Zeiss Ikon Contaflex Super BC, Carl Zeiss Tessar 50mm 2.8, Kodak TMax 400 / 36 Exp., Konica Minolta Dimage Scan Dual 4에서 컬러 네가티브 스캔, Adobe Lightroom 4.1 Beta에서 흑백 변환) Posted by Picasa

내가 좋아하는 밤나무.

 별 계획 없이 가는 양평의 유명산 일주 도로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중에서 이 나무는 그냥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무이다.

유명산 일주 도로를 따라가다 멀리 마을 소리가 들리는 곳의, 지금은 담벼락만 남은 집터에 있는 나무다.

꽤나 큰 밤나무인데 밤이 크게 열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작은 밤톨들이 가을이면 많이 떨어진다.
낙엽도 나무 덩치에 맞게 엄청나게 많이 떨어져서 주변을 온통 폭신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나무 주변을 압도할만큼 크진 않다. 그저 적당하게, 주변의 나무들과 숲을 이루지만 그 존재감은 확실하게, 그렇게 적당히 크다.

하지만 내가 이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것들 뿐이 아니라 그 생김새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겪으며 자랐는지 이리 저리 많이도 꼬여있다. 그 덕에 꼬인 가지들을 따라 하늘을 향해 눈길을 옮기려면 여간 집중해서 봐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집중해서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다보면 유명산에 올만큼 쌓아 놓았던 생각들이 잊혀진다.
간혹 그렇게 따라 올라가면서 혼자말처럼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답을 주진 않지만 대답을 꼭 듣지 않아도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정답을 들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보기가 좋은 나무이다.

겨울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번 겨울엔 잊지 않고 보러 가야겠다.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경기도 양평 유명산 일주 도로에서, Zeiss Ikon Contaflex Super BC, Carl Zeiss Tessar 50mm 2.8, Kodak TMax 400 / 36 Exp., Konica Minolta Dimage Scan Dual 4에서 컬러 네가티브 스캔, Adobe Lightroom 4.1 Beta에서 흑백 변환)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10일 금요일

마지막 가을이 주고 간 색.

 가을이라고 여기 저기 헤매고 다니며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대관령에, 백담사에, 오대산에 돈을 뭉태기로 써가며 이리 저리 다녔는데 정작 맘에 드는 사진은 별로 얻질 못했다.
워낙 실력이 모자라기도 하지만 가을이라고 욕심이 앞서서 그런 건지 더 맘에 들지 않는다.
그나마 이번 가을에는 중형 카메라를 애용하느라 렌즈 바리 바리 싸들고 다니지 않은 것은 좋다.
어깨가 편안하니까...

가을이면 역시 원색이 즐거운 계절인데 이번 가을엔 단풍들이 좀 칙칙해 보인다.
TV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가물어서 그렇다고 하던데...
흠... 가뭄 때문이면 더 잘 말라서 색이 잘 나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이런 색을 담아왔다.

 양지 본가는 집이 좀 이상하게 앉아 있어 현관 쪽에 볕이 더 잘 든다. 그래서인지 현관 쪽에서 자라는 이 담쟁이는 아직도 싱싱한 녹색을 보여준다.
싱싱한 녹색과 빨간 색이 함께 있으니 참 보기 좋았다.

가을 색은 멀리 있지 않았다. 주말에 찾아가던 본가 마당에 가을 색이 있었다.

혹시 내가 가을 내내 칙칙한 단풍들을 보러 돌아다녔기 때문에 이 색을 알아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다행이고...

어쨌든 멀리 갈 때마다 기름값에 고속도로 통행료에 주머니가 거덜 날 지경이었는데 본가 마당에도 찍을 게 많으니 작게 "히죽" 웃게 된다.

"히히, 돈 굳었다."


(2006년 11월 5일 일요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본가 마당에서, Kiev-6c, Vega-12B 90mm 2.8, Fuji Reala 100 / 12 Exp., CuFic Normal Film Scan)

(2006년 11월 5일 일요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본가 마당에서, Kiev-6c, Vega-12B 90mm 2.8, Fuji Reala 100 / 12 Exp., CuFic Normal Film Scan, Adobe Lightroom Beta 4 Build 264255 에서 크롭)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9일 목요일

사라진 학교의 추억. 쓸쓸함. 부러움.

 간혹 계획에 없이 어딘가를 가고 싶을 때 자주 가는 곳이 양평인데 양평에서도 유명산을 일주하는 도로를 제일 즐긴다.
이 도로는 이런 저런 까페가 많은 곳을 다 지나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가는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니다.
덕분에 그나마 조용히 산을 볼 수 있다. 물론 정말 조용히 산을 보고 싶다면 걸어서 산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걸 알지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그러기는 정말 힘든일이고...

그 길을 쭉 가다보면 유명산 속의 용천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지금은 펜션들이 워낙 많아져서 그곳에도 집들이 아주 많아졌다.
그래도 아직 비포장 도로로 움직여야 하는 곳이니 나름대로 오지라면 오지다.
그곳에 가면 1994년에 폐교되어 없어진 초등학교 터가 하나 있다. 옥천초등학교 갈현 분교 터라고 하는 데 지금은 건물도 남아 있지 않다.
남은 것이라고는 사진에서 보이는 교문 기둥, 그네, 작은 건물 하나가 다이다.

교문 기둥 옆에 보면 그곳이 학교 터였다는 사실과 그 학교를 처음 만들었을 때 사정 등을 적은 작은 비가 서있다.

 스산한 바람이 불 때 이곳에 서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슬프다.
건물도, 사람도 지나가 버리면 이렇게 아무 것도 남지 않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폐교된 후 겨우 12년이 지났는데 운동장 자리엔 길이 나고 잡초가 무성해졌다.

"기념비"에 적힌 글을 보면 1950년 대에 몇 사람의 부지 희사로 지어진 학교에서 100명이 못되는 졸업생을 배출한 것으로 나와있다.
얼마나 조용하고, 서로 잘 아는 시절이었을지 짐작된다.
40년 동안 100명이 못되는 졸업생이라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반에만 50명 쯤의 학생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작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참 부럽다.
학교와 관련된, 학교를 함께 다닌, 학교 주변의 모든 풍경이 온전히 "추억"으로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부럽다.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유명산 일주 도로 변 옥천초등학교 갈현분교 터에서, Kiev-6c, Vega-12B 90mm 2.8, Konica Minolta Centuria 100 / 12 Exp., CuFic Normal Film Scan) Posted by Picasa

2006년 11월 1일 수요일

난 기계 매니아다.

 이공계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자신이 기계 매니아인지 잘 모른다. 오직 기계 매니아가 아닌 사람을 만나야 자신이 기계 매니아임을 알게된다. 왜냐하면 기계 매니아가 아닌 사람(음... 정상인?)들은 기계 매니아가 기계에 하는 짓을 보면 매우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다른 방법이란... 다른 기계 매니아가 하는 짓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다른 기계 매니아가 하는 짓을 보고도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기계 매니아다.

근래 자주 보는 친구 역시 아주 강렬한 기계 매니아다.
오래 전부터 나 자신이 기계 매니아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가 하는 짓을 보니 이 친구도 친구지만 나 자신이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중증의 기계 매니아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중요하다. 아는 게 아니고 느끼는 거다).

이 친구는 사진도 기계를 대상으로 찍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 친구의 그런 행동이 전혀 낯설지 않다.
허허허허...
게다가 그런 장면을 나도 같이 찍고 있다.

이것도 커밍아웃이라면 커밍아웃인데...
나, 기계가 좋다...


(2006년 10월 28일 토요일, 서울 정동 극장 부근 공사장, Kiev-6c, Vega-12B 90mm 2.8, Kodak Portra 160VC / 24 Exp. / 2005-11, CuFic Normal Film Scan, Adobe Lightroom Beta 4 Build 264255 에서 흑백 변환) Posted by Pic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