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18일 수요일

휴대 전화 유감

얼마 전에 휴대 전화 서비스 회사를 바꿨다.

이전에 사용하던 SK Telecom에서 KTF로 바꿨는데 바꾸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바꾼 것이다. 장장 10년 동안(사실 10년에서 몇 달 빠진다) 사용하던 회사를 바꾸면서 여러 가지 불안한 점들이 있었다. 시골 오지로 여행을 자주가는데 잘 안되면 어쩌나. 음질이 SK보다 못하면 어쩌나 등등...
기술자로 살아오면서 KTF와 SK의 전파 특성에 대해 알고 있으니 불안한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 긴 기간 동안 바꾸지 않고 이리 저리 전화기의 수명이 다할 때마다 싼 중고 폰을 알아보고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그러기가 싫었다. 내가 아무리 전화를 잘 안걸어서 이익이 남지 않는 고객이라고 해도 장장 10년을 쓴 단골 고객인데 단골에게는 비싸게 전화기를 사라고 하고 새로 가입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무료에 가깝게 싸게 파는 꼴을 보고 참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낸 전화 요금을 모아 다른 사람 전화기를 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화딱지 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체 SK Telecom은 무슨 생각으로 장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장사의 기본은 단골 확보라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데 조용히 잘 쓰는 사람은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지난 10년 동안 SK Telecom을 사용하면서 전화를 통해 나눈 대화, 전화로 이어진 인연들, 전화로 소식을 들으며 기뻐하고 슬퍼한 많은 추억들 때문에 그냥 막연하게나마 SK에 가지고 있던 좋은 감정들이 한 방에 날아갔다.

내 젊은 시절 10년 동안 늘 전화기를 옆에 끼고 있었으니 이 전화기와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었겠는가.
한밤에 경포대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해 파도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전화기를 바다 쪽으로 들고 서있던 시간들.
설악산 대청봉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그 벅찬 감정을 나눠주던 일.
헤어진 사람의 전화 번호를 전화기에서 지웠지만 손가락이 저절로 눌러지던 일.
이 모든 추억들 옆에 늘 SK Telecom이 있었는데 단지 전화기 가격 때문에 좋은 친구(SK Telecom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를 버린 기분이다.

이런 식으로 단골을 밀어내는 SK Telecom은 후회할 것이다.
이제 무작정 SK가 좋아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라고 말할 것이다. 복잡한 전파 특성에 대한 설명도, 시골 오지에서의 통화 성능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잘못하면 그냥 참을 수 있지만 공급자가 잘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SK Telecom은 추억을 함께하는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17일 화요일

치과 치료 후의 아픔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전혀 몰랐다.
이를 뽑는지, 이를 갈아 내는지...
마취를 하고 치료를 받으니 뭘 느끼지 못한다. 다만 뭔가 막대기가 들어와 혀 뿌리에 닿으면 구역질이 나서 괴로울 뿐이다. 오늘도 치료를 받으며 3번이나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구역질을 해야하는 나도 고역이지만 그러는 환자를 봐야하는, 그래서 치료 도중에 멈추고 기다려 줘야 하는 의사 선생님도 괴로울 것이다. 환자가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뭔가 도구를 사용해 치료를 받는 과정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기 보다는 내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늘 목에 있는 가래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게 입을 오래 열고 있으면 좀 말라서 아주 괴롭다. 구역질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덕분에 치과 치료를 받을 때마다 확 담배를 끊어 버릴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다만 치료 받고 하루 동안 금연하는 것을 괴로워할 뿐이다.

오늘은 사랑니를 마저 뽑아서 왼쪽 어금니 쪽이 아주 아프다. 점점 더 아파지는 것을 보니 마취가 깨어나는 것 같다. 아침에 깜빡하고(벌써 3번 째 치과 치료라고 이제 방심을 좀 하나 보다) 헥사메딘이라는 마취제가 좀 들어간 가글 액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번 쓰지도 않은 게 한 병이나 있는데 다시 사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입 다물고 견디고 있는데 아주 아파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러길래 평소에 치솔질을 좀 열심히 하는 건데 괜히 사탕 먹고 자고, 초코렛 먹고 자고 그랬다. 누가 말하길 현명한 사람은 들어서 알고, 똑똑한 사람은 보고 알며, 멍청한 사람은 당해야 안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멍청한” 사람이다. 이빨에 방심하다 제대로 당한다.

아... 아프다.
치료 받은 곳이 아픈 것 뿐만 아니라 그곳을 보호하느라 물고 있어야 하는, 앞으로도 적어도 1시간은 더 물고 있어야 하는, 거즈 때문에 이빨이 아프다. 의사 선생님이 “꽉” 물고 있으라 했으니 느슨하게 턱을 쉴 수도 없고...

치과 치료는 정말 더 받고 싶지 않다. 정말.

좋은 것을 좋은 그대로 놔두기.

대학 시절부터 무지하게 많이 간 절이 월정사이다.
다른 이유는 별로 없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짝사랑하던 사람이 이 절의 풍경을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나야 부모님 따라서 전국을 여행했었기 때문에 더 좋은 풍경을 찾으라면 찾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짝사랑하던 사람이 좋다고 하니 그냥 덩달아 좋아졌다(물론 짝사랑하던 사람과 월정사에 가기 전에도 난 월정사에 자주 갔었다).
그렇게 별 이유없이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말뚝에도 인사한다”는 식으로 좋아하다보니 어느 덧 내가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물론 이제는 월정사를 다른 눈으로 볼 기회를 줬던 그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친구로서 가끔 연락을 할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애인으로서 보다는 친구로서 더 소중한 녀석이다. 인연은 따로 있다. 정말...).

월정사에 처음 가는 사람과 함께 월정사를 찾아가면 처음 하는 일이 전나무 숲 산책이다. 월정사의 일주문에서 본사가 있는 곳까지 숲이 아주 기분 좋을 정도로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를 걷고 있으면 정말 속세의 고민이 다 풀릴 것 같으니 아무리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가도 이 산책은 포기를 못한다. 포기한 적도 사실 없고.
숲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차분하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준다. 도시에서 만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도 참 좋은데 월정사 전나무 숲 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것은 더 좋다.
특히 한 여름에 나뭇가지 사이로 드문 드문 내려오는 빛을 보며 걷는 기분이란... 정말...

월정사의 사천왕이 계신 곳에 다다르면 바로 앞으로 흐르는, 약간 큰 내를 보게 되는데 4계절 늘 맑은 물이 넘치게 흐른다. 졸졸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는 걸 느끼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오래 전에 학교 친구들과 돈 한푼 가지지 않고 무작정 찾아 갔을 때 그 물에 비치던 달을 본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정말 배가 고파 그 달이 빵이나 밥 사발 쯤으로 보였던 것 같은데... 하하하...
겨울에 눈이 오면 개울엔 얼음이 얼고 그 위에 눈이 쌓이게 된다. 숲에 내리는 눈이 다 그렇듯이 눈 위에 여기 저기 놓인 낙엽 자국 없이 그냥 한가지 하얀 색으로 눈을 볼 수 있는 곳이 이 개울이다. 운동장처럼 시원하게 넓은 곳에 깨끗하게 눈이 깔린 것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주변의 숲에서 동떨어져 깔끔하게 한켜 “깔린” 개울 위의 눈을 보는 것도 괜찮다. 숲에서 보면 약간은 색다른 맛이다.

월정사는 워낙 오래되고 규모도 있고 역사도 오래된 절이라 이렇게 저렇게 건물들이 많은 편이다. 내가 가진 월정사에 대한 첫 기억과 비교하여도 여기 저기 새 건물들이 많아졌다.
돈에 여유가 있어 좋은 건물을 예쁘게 만들어 내는 것도 좋은 일이라 너무 복잡하거나 “거대한” 건물만 아니라면 그냥 저냥 참고 보는 편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월정사의 절 집들은 작진 않아도 너무 커서 압도적이지는 않다. 혼자 가진 바램이라면 주변 숲과 산을 압도하는 건물은 월정사에 들어서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참 슬플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일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일도 월정사엔 있다.
어느 날 월정사에 갔더니 건물과 탑에 조명 시절을 새로 했었다. 밤에 빛이 나는 건물과 탑을 보는 것도 아주 나쁜 일은 아니라서 그냥 참고 있었다.
사실 밤엔 밤 답게 별 빛을 어깨 뒤로 보여주는 기와 지붕을 보는 게 더 좋다. 아주 까만 밤만 아니라면 건물의 실루엣이 밤 하늘의 별과 함께 너무나 좋은 풍경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 나라 기와 지붕은 그 곡선 덕에 밤 하늘을 지나는 작은 구름과 그 사이의 별들을 아주 잘 보여준다. 참 잘 어울리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이 조명이 이상해졌다.
탑을 비추는 조명이 색이 들어간 것이다.
대체 어떤 사람의 생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대단히 “창의적” 발상이다.
생뚱맞고 촌스럽기 그지 없는 초록색 등등으로 바뀌는(그렇다! 색이 바뀌기도 한다!) 탑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서울에 있는 건지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전국의 절마다 저런 일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른 절들엔 내가 밤에 가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밤에 가볼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다른 절이 없다.
제발 저 색과 그 색깔 바뀜만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냥 좋았던 것들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젊은 시절 “좋았다”고 느끼던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나 내가 나이 들어서도 그 좋음을 느꼈던 나이를 즐기고 있을 내 후손에게 말해줄 수 있게, 그리고 다시 그 “좋음”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말이다.


(2007년 3월 31일 토요일, 오대산 월정사,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SPP 2.1 for Mac OS)
(2007년 3월 31일 토요일, 오대산 월정사, Sigma SD10, Sigma 24-70mm 2.8 EX DG Macro, SPP 2.1 for Mac OS)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감자 꽃

한 달 전 쯤 다용도 실을 청소하다가 겨울 동안 안 먹고 남겼던 감자에서 싹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실과 시간에 감자에 싹이 나면 독이 생긴다고 배웠던 터라(나름대로 공부는 못해도 성실한 학생이었다. 나름대로는...) 버리려고 따로 꺼냈는데 기왕 싹이 났으니 심어보자고 영리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날 마침 강아지의 미용을 맡기러 나간 김에 화분과 흙을 사왔다. 사실 화분은 그냥 덤으로 얻었다. 흙을 사니 버리려고 하는 화분을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그렇게 그냥 저냥 가져온 화분과 기대없이 사온 흙(퇴비도 들어 있는 흙)을 써서 불성실하기 짝이 없게 싹이 난 감자 3개를 화분에 심어 놓았는데 어느덧 자라 감자 꽃이 피었다.

베란다 구석에 놓고 일주일에 한 두번 물을 줬을 뿐인데 거의 1m 정도를 자라더니 저렇게 꽃이 피었다.
영리나 나나 감자 꽃은 생전 처음 본다.
둘 다 도시에서만 자랐으니 저런 "농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워낙 크게 자라길래 둘이서 "이건 감자 나무야" 이러고 있었는데...

꽃이 생긴 것으로 봐서는 풍매화가 아닌가 싶은데 잘 모르겠다. 아직 동네에 벌이 날아다니지는 않는데... 아무튼 잘 자라는 것을 보니 올 가을엔 집에서 기른 감자를 먹어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가 생긴다.

전에 처형께서 주신 화분을 기른 적이 있었다. 사막에서 자라는, 말 그대로 1년에 한 번 물 주면 잘 자라는 식물로 구성된 화분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죽었다. 나름대로 잘 기른답시고 한달에 한 번씩, 그것도 나 한 번, 영리 한 번 이렇게 줘서 썩혀서 죽였다.
아마 살아 있는 것들은 약간 무관심해야 하는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 감자를 심고서는 갑자기 회사 일이 바빠져서 신경을 제대로 못 쓰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잘 자란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감자는 땅 속에서 뿌리에 생기는 것일텐데 어떻게, 왜 꽃이 피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지식의 보고 네이버에 물어봐야 겠다.
심을 때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몰라서 네이버에서 찾아 심었는데...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경기도 용인 죽전 집 베란다, Sigma SD10, Sigma 24-70mm EX DG Macro, SPP 2.1 for Mac OS X, AppleRG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