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3일 화요일

부탁

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 꼭 지키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내게 부탁받는 사람이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부탁받는 사람이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부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내 부탁을 부담없이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부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내 부탁을 당당히, 편하게, 쉽게 거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내 판단이기 때문에 이 판단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참 난감하다.
난 분명히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부탁을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내 부탁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텐데 내가 그걸 금새 알아차리지 못해(한 마디로 내 눈치가 밥통이라서) 계속 부담을 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올해 초에 그런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일이 많이 어려워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내 "친분 관계 판단"에 믿음이 없어졌다.
그래서 부탁하는 것에 부담이 많아졌다.
원래(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부탁이라는 게 어느 정도 내 부담(앞에서 말한 부담과는 좀 다른)을 줄이기 위해 하는 일인데 부탁을 하면서 또 다른 부담이 생기니 이거 정말 스트레스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 해줄 때는 평생 똑같이 해줄 수 있는 것만 해야 한다. 그래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다."

정말 가슴에 와 닫는 내용이라 내가 지킬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로 편입시켰는데 요즘 이 말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말인지 새삼 느낀다.

부탁은 Give and Take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혹시 잘못된 생각이 아닌지 곰곰히 돌아보고 있다.

다른 사람의 "거절할 자유"를 제대로 존중하고 싶다.
내가 그런 대우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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