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4일 월요일

다시 필름으로 사진 찍기.


(2008년 7월 19일 토요일, 서울 성산동 집 앞, Nikon D300, AF Nikkor 20mm 2.8D, Adobe Lightroom)

아기가 태어난다는 핑계로 막대한 돈을 들여 Nikon D300을 구입한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디지털 카메라의 특성상 이렇게 저렇게 막샷을 날려도 돈이 들지 않아 사진 찍는 양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 생각을 했건만 5개월동안 D300으로 찍은 사진은 고작 1200장 남짓. 이거야 원, 필름으로만 찍을 때보다 더 못하다.


처음 이 기계를 살 때는 "아기가 태어나니 엄청난 샷을 날려서 좋은 것만 남기자" 이런 의욕에 불 타 올랐는데 실제 사용 형태는 그렇지가 못하다. 고민스럽다.


사진에 흥미를 느낀 후 계속 필름을 주로 사용했었고 첫 디지털 SLR 역시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것과 별 반 다르지 않은 성격의 카메라를 사용해서 그런지 지금도 "막샷"은 체질에 맞질 않는 것 같다. 많이, 더 많이 찍어야 사진이 좀 늘텐데 하는 생각만 맨날 한다.


지난 주말에 뭔 바람이 불었는지 냉장고 속에서 얼어 죽어가던 필름을 한 통 꺼냈다. 필름만 쓸 때 같으면 한 번 찍으러 나가서 서너 롤은 우습게 썼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 롤 찍기도 힘들다. 전반적으로 셔터에 손이 잘 안 간다.


디지털 SLR을 쓰면 뭔가 내 손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보다는 컴퓨터가 만들어주는 사진에 손 하나 거들 뿐이라는 느낌이다. 좋은 장면을 기록하고, 내 느낌과 시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준다는 원래 의미에 변함이 있을리 없음에도 그런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구 세대"인 모양이다.


지난 주말에 꺼낸 필름은 지금 Lomo LC-A에 들어 있다. "즐기는 사진 찍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간단하고 작은 카메라를 집어 들었는데(사실은 책상 위에서 굴러 다닌 지 2달이 넘었기 때문에 미안해서... ^^;;) 역시나 "들이대고 찍기"가 즐겁다. 커다란 렌즈를 달고 확실한 "존재감"을 주는 D300과는 다르다. 찍는 나나 찍히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말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면서 내가 느끼던 "무성의"와 "가벼움"을 말하는 동호인을 많이 봤는데 그 느낌의 결과는 역시나 "자괴감"과 "게으름"이다. 재미가 없으니 더 적게 찍고 더 적게 찍으니 흥미가 떨어지는 악순환이다. 그러니 사진보다는 장비에 눈이 가고 다른 회사의 카메라에 눈이 가니 돈만 들어간다.


어차피 디지털이 대세인 시기라 필름에만 전념할 의지도 경제적 능력도 없지만 반반 정도의 소비량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냉장고 속에서, 카메라 속에서 내 손을 기다리는 필름들에게 새 생명을 줘야 겠다. 그러다 보면 사진 찍는 시간보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시간이 더 긴 D300도 더 바빠지겠지.


미치도록 사진을 찍고 싶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느낌을 다시 살리고 싶다. 비록 어설프고 조악한 구도 밖에 모르던 시기지만 그 때가 더 즐거웠다.


어차피 난 즐거움을 위해 찍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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