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7일 월요일
나른한 오후의 고궁 산책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집에 있기 좀 민망해하고 있었는데 처형이 연락을 주셨다.
빈센트 반 고호의 작품전이 오늘 끝난다고...
그래서 급하게 준비해 서울 시립 미술관으로 나갔는데 우리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무진장 많았던지 입장객 줄이 시립 미술관에서 덕수궁 대한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허허허...
그 덕에 길게 늘어선 줄을 잠시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 그냥 포기했다.
잠깐동안 이걸 어쩌나하고 있다가 집사람이 아직 한 번도 덕수궁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덕수궁을 구경하기로 했다.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에 올라온 집사람은 17년이나 서울에 살면서 아직도 안 가본 곳이 많다. 그래서 가끔 황당해 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가봤을 줄 알고 이야기하면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고 해서 말이다.
덕수궁에 들어가니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
경복궁처럼 화려하고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건물들이 고궁으로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고 또 다른 궁궐에는 없는 석조전도 있고 해서 기분 좋게 산책을 했다.
산책을 하다보니 석조전에 있는 미술관에서 화가 최영림과 일본 화가인 무나카타 시코라는 사람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호전을 포기하고 온 터라 이거라도 보자하고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약간 어두운 화면에 거친 질감의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총 4개의 전시실을 다니며 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중간 중간 쉬어야만 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그렇고 임신을 해서 몸이 무거운 집사람도 그렇고...
2층에 있는 예쁜 창 가에 벤치가 놓여 있어 봄 햇살을 즐기며 쉴 수 있어 좋았다.
창 살이 특이한 모양이라 창 밖을 보면서 창의 아름다움도 같이 즐길 수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게으른 햇빛도 함께.
게으른 부부에게 덕수궁 석조전이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이렇게 바닥에 보기 좋은 그림을 그려주었다.
미술관에서 보는 빛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더 아름다운 것 같다.
미술에 무식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이제 2달만 있으면 집사람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난다.
초음파 검사 결과 아들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한 동안 이런 여유는 느낄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아들을 따라다니기에도 벅찰 것 같은데 태어나기 전에 열심히 여유를 만끽해야겠다. 태어나면 적어도 10년 후에나 이런 여유가 생길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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