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2일 토요일

남자들 중에도 천사가 있다!

 이제 1년만 더 지나면 만난지 20년이 되는 친구다.

이런 저런 고민도 많고 이리 저리 충돌도 많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라 특별히 뭘 말하거나 하지 않아도 그냥 안다. 막걸리를 땡겨하는지, 고갈비를 땡겨하는지, 아니면 고갈비를 가장한 이면수 튀김(?)을 원하는지 그냥 안다.

고등학교 때 이 친구는 세상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몰라준다고 많이 고민했었는데 아직도 그 예술 세계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한 마디로... 철이 덜 난 친구지. 그렇다고 내가 철이 났다는 말은 또 아니고.
원래 친구 사이라는 게 다 그놈이 그놈이고 똑같은 놈들끼리 노는 것이니까.

자주 얼굴을 보거나 살갑게 전화질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한달이나 두달만에 전화해도 그냥 어제 밤에 술먹고 헤어진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처럼 몇 마디 말을 하다 끊는다.

그냥 그렇게 몇 마디 말을 하는 게 전부지만 그냥 편하게 "나와라, 짜식아"라고 해도 부담 없이 나와줄 친구다. 지 불편하면 맘 편히 안 나올 놈이라는 걸 뻔히 알기 때문에, 그리고 안 나온다 한들 잠깐 삐지면 그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놈이기에 아무 시간에나 "나와라, 짜식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녀석 신기한 놈이다.

스무해 가까이를 알아오면서 아직 화를 내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온 세상이 다 짜증의 도가니탕이었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첫 사랑과 헤어진 대학교 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 까지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누굴 만나건 한 두 번은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게 정상인데 이 녀석과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엽기적으로 비정상적인 친구 사이다. 나와 이 녀석은.

그나마 난 "정상적으로" 화도 내고 그런다. 다만 이 녀석이 화를 안낼 뿐이다.
하긴 나야 성질 더러워서 누구에게나 화를 내긴 한다. 쌈닭이 뭐 그렇지... 허허허...
화를 참는 건지 그냥 화가 안나는 건지 이제 보면 알만한데 참는 경우도 있고 안내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화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없다.
하긴, 싫은 소리를 하는 꼴도 못 봤는데 화를 내긴 뭘 내겠냐만은...

옆에서 보기엔 좀 안쓰럽다. 간혹 화도 내고 그러면 살이 좀 찔텐데...

가끔 천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꼭 화를 안내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악역은 하나도 안하니까...

나 처럼 좀 모자라는 사람에게 하늘이 걱정스러워 하나씩 딸려보내는...

짜식, 이번엔 내가 쏘주 함 쏴야하는데. 허허허...


(2006년 8월 17일 목요일, 서울 인사동 피맛골 고갈비집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FED 1, FED 50mm 3.5, Ilford Delta 400, Konica Minolta Scan Dual 4) Posted by Picasa

댓글 2개:

익명 :

음... 네글 읽다가 졸려서.. 제수씨 블로그에 잠깐 갔는데 훨 재밌다. ㅎㅎ 거기서 놀다 보니 시간이 꽤 갔네.. 음.. 벌써 새벽 2시반.. 빨리 논문 마무리하고 자러가야 할텐데.. 띠불.. 아그! 내일도 정말 하루종일 정신없을텐데!

Unknown :

허허허허허... 배신이다...

그래도 글을 남겼으니 봐준다...
자주 와서 소식 좀 알려라.
건강 조심해. 바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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