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0일 월요일

답답하고 또 담담한 하루

 종일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며 지냈다. 영리와 함께, 또 차돌이와 다투며 종일 집에서 있다보니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할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 늦잠으로 시작된 게으른 하루는 빈 틈을 보이지 않고 끝이 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까운 주말도 한 자락 날아갔다.

 1년이면 기껏 쉰 두 번 밖에 오지 않는 주말을 이렇게 집에서 낭비하는 것도 일면 답답하기도 하고 일면 담담하기도 하다. 궂이 편안하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불편하다고 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조용하고 별 사건 없는 시간이 많이 지나면 내 인생도 좀 조용하고 편안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그렇게 조용하게 된다는 것이 인생을 "잘" 산 증거가 될지도 알 수 없고.

 예전에 피가 늘 끓어 오르던 20대 초반에는 늘 바빴다. 누가 불러 주지도 않고 주머니에 아무 것도 없어도 무조건 나가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조용한" 또는 "담담한" 주말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 마치 조울증 환자들인양 이것에 감동하고 저것에 분노하며 길고 긴 시간에 힘들어 했었다.

 아직도 가끔 피가 끓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그 역시 예전만큼은 아니고 예전에는 갖지 못하던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훨씬 편안한 삶을 갖게 된 것인데 왜 가슴은 다 차오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20대 초반엔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뭔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난 뭘 알지는 못하고 있고. 그리고 이미 지나가 버린 열망의 시간이 남긴 것은 뭔가 그리움이다.

 아마 가끔씩 내 20대에 꿈이던 Nikon F5가 이제는 손에 넣을 수 도 있는 꿈이 됐건만 내 가슴을 누르는 것도 내가 이미 갖지 못하게 된 그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모양이다. 비록 내가 지금 그 시절 꿈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아마 그 가슴 아픔과 그리움을 다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20대의 꿈이 늘 그러했고 그 꿈의 결과들이 늘 그러했던 것처럼.

 하루 하루를 지내고 또 재미없어진 하루를 시작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는 것은 특별히 반성이 아니여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저 사진처럼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라도 하늘만 볼 수 있다면 씩하고 웃어줄 여유도 생긴 것 같고, 또 저런 공간에 낯이 설지도 않은, 이제 내 나이 서른 여섯이다.

(2006년 4월 24일 경, 구로 코오롱 사이언스 벨리 II 중앙 휴식 공간, Nikon F-301, Tamron SP 17mm 3.5, Kodak TMax 100, Konica Minolta Scan Dual 4) Posted by Pic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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