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4일 월요일

살아 남기

동호회 분들과 헤이리를 다녀왔다.

관광 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경기도가 노력하는 곳인 것 같은데 예쁜 집들과 여러 갤러리, 카페 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사진을 찍을 것도 많은 곳이다. 그 덕에 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참 많다.

SLR을 들고 있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마추치면 좀 주눅이 든다. 내 사진에 자신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게다 상대방이 좋고 비싼 렌즈, 흔히 대포라고 하는, 라도 들고 있다면 이런 주눅은 더 커지고 급기야 내 카메라를 가리는 일도 한다. 하하하하...

물론 상대방도 거의 비슷한 걸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서로 쑥스러워하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카메라를 들고 좋은 사진을 찍으며 살아 남으려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난 아직 멀었나보다. 아직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누가 쳐다 보면 카메라를 가방에 넣거나 그곳을 빨리 지나친다.

얼마 전에 혼자 술을 먹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술에 취해 찍은 사진이 더 느낌이 좋다. 아마 술 덕에 쑥스러움을 덜 느껴서 그런 모양이다.
평소 낯을 가리거나하지는 않는데 사진에 대해서는 그게 잘 안된다.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게 참 웃기는 일이다.
결과물이 좋아져야 자신감이 생길텐데 자신감이 없으니 좋은 장면에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대질 못하고 그렇게 찍어대질 못하니 결과물이 좋아지질 않는다.
잘못 만들어진 프로그램 처럼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다. 그러니 남겨 놓을만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헤이리에서 찍은 사진들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서 거미들에게 긴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었다.
구도도 그렇고 배경이 된 하늘의 구름도 그렇고 다 마음에 든다.
배경의 구름을 어떻게 처리할지, 오른 쪽의 기둥을 어떻게 나타낼지 고민하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렇게 집중할 수 있어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많이 버리고 남은, 살아 남은 사진이다.

거미들이 살아 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먹이가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먹이를 잡아 먹어야만 살아 남는다는 것만을 안다. 그리고 그게 잔인하다는 것만 안다.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희생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죽어야 하니 이걸 보고 잔인하다고 말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인 것 같다.

우리 나라처럼 경쟁이 심각한 나라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다.
단지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남들을 "이겨야"하니 말이다. 다 같이 열심히 노력하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회는 꿈 속에서나 있을 것 같고 현실에선 무한히 싸워가며 살아 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들이야 살던 말던 상관 없이.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는 "먹이"로 삼아야 하는 이 악순환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그 "먹이"가 되는 것도 싫다.

난 그냥 나니까.
오늘도 살아 남기위해 노력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먹이"를 잡아 먹으면서...


(2006년 8월 12일 토요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Sigma SD10, Sigma 70-300mm 4-5.6 APO DG Macro) Posted by Pic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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