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3일 월요일

내가 좋아하는 밤나무.

 별 계획 없이 가는 양평의 유명산 일주 도로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중에서 이 나무는 그냥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무이다.

유명산 일주 도로를 따라가다 멀리 마을 소리가 들리는 곳의, 지금은 담벼락만 남은 집터에 있는 나무다.

꽤나 큰 밤나무인데 밤이 크게 열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작은 밤톨들이 가을이면 많이 떨어진다.
낙엽도 나무 덩치에 맞게 엄청나게 많이 떨어져서 주변을 온통 폭신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나무 주변을 압도할만큼 크진 않다. 그저 적당하게, 주변의 나무들과 숲을 이루지만 그 존재감은 확실하게, 그렇게 적당히 크다.

하지만 내가 이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것들 뿐이 아니라 그 생김새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겪으며 자랐는지 이리 저리 많이도 꼬여있다. 그 덕에 꼬인 가지들을 따라 하늘을 향해 눈길을 옮기려면 여간 집중해서 봐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집중해서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다보면 유명산에 올만큼 쌓아 놓았던 생각들이 잊혀진다.
간혹 그렇게 따라 올라가면서 혼자말처럼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답을 주진 않지만 대답을 꼭 듣지 않아도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정답을 들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보기가 좋은 나무이다.

겨울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번 겨울엔 잊지 않고 보러 가야겠다.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경기도 양평 유명산 일주 도로에서, Zeiss Ikon Contaflex Super BC, Carl Zeiss Tessar 50mm 2.8, Kodak TMax 400 / 36 Exp., Konica Minolta Dimage Scan Dual 4에서 컬러 네가티브 스캔, Adobe Lightroom 4.1 Beta에서 흑백 변환) Posted by Pic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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