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어떻게 볼지는 내가 정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변화 없는 사물을 어떻게 볼지는 보는 사람이 정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 덕에 내가 본 시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단으로서 사진이 아주 효용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동호회 게시판에 수없이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가끔 심각하고 숙연(!)하게 만들어주는 글들이 있는데 그런 글들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폭력이다"


내 웃기는 기억력으로 판단하건데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요지는 그랬다.
내 관점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참 정확한 말인 것 같다.

 변할리 없는 풍경에서 달랑 네모난 부분을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고 해서 거짓 아닌 거짓을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다.
부분 부분들이 서로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지를 묵묵히 짐작해서 네모 속에 잘라서 보여주는 것.
그게 사진이다.

혹은 이렇게도 말한다.

"넓고 특별하지 않은 풍경에서 작고 특별한 장면을 꺼내는 것이 사진이다"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말은 워낙 많아서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내 '이미지 위주 기억' 체계에서 '문장'의 출처를 찾아낸다는 것은 멸치 박스에서 꼴뚜기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 (멸치 박스에서 찾은 꼴뚜기가 맛이 있긴 하다)

아무튼, 사진에 대해 다들 나름의 생각을 가진 모양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제일 동의하는 의견은 첫 번째로 말했던 폭력이라는 말이다.
찍히는 사물에게 폭력일 뿐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도 일변 폭력적이다. 사진을 만들어낸 사람의 관점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강요하기 때문이다.
파주에서 찍어 온 이 사진들도 사실 마지막 사진이 보여주는 풍경의 일부들이다. 그러나 서로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내가 정한 관점에 따라,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강요당한 관점'을 수용당한다.
주먹으로 치는 것만 폭력이라고 보진 않을 것이다. 이런 강요, 예외없이 적용되는 규정들, 무관심한 일처리... 다 폭력적이다.
세상이 워낙 폭력적이라 사진의 폭력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르기 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 특권을 잘 향유하다가 어느 순간 그 풍경에 칼을 대는 것. 그게 사진찍기다.

어쩌면 내가 사진을 찍으며 내 고민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세상이 내게 준 폭력적 상황을 그대로 되갚아 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볼지에 대해 내가 정한 규칙대로 만들어낸 사진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을 한다.
내가 본 것을 똑같이 보라고 강요한다.

난 폭력적인 사진을 찍는다.


(2006년 11월 12일 일요일, 경기도 파주 평화 누리, Kiev-6c, Vega-12B 90mm 2.8, Ilford Pan F 50 / 12 Exp., CuFic Normal Film Scan, Adobe Photoshop CS2에서 먼지 제거, Adobe Lightroom 4.1 Beta에서 크기 변환) Posted by Picasa

댓글 2개:

Hong :

사진이 폭력일까? 누가 누구에게 가하는 폭력일까? 사진을 찍은 작가가 관객에게 가하는 폭력? 아니면 기계와 광학과 화학이 인간에게 가져온 공포?
잘 모르겠는데. 예컨데, 사람은 말을 배우고 예절을 배우고, 아버지한테 복종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세상은 나에게 뭔가를 억압하고 강요하고 마찬가지로 뭔가를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볼 것을 강요한다고 하면 그것은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사진은 시각적인 자유를 가져다 주기도 했지, 예를 들면, 1/12000 초로 유리를 관통하는 총알을 찍으면 어떻게 보일까, 이런 것은 실제로 사진이 찍히고 인화가 될 때까지 사진을 찍은 사람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런 시각 효과를 가져왔던 것.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일까, 아니면 사진이라는 그 기계자체가, 사진 메커니즘이라는 로봇이 사람 앞에 제시한 폭력일까. (그것이 폭력이라고 한다면..)
사진이 '두려운 것'이라고 한다면 공감해. 사진은 사람이 셔터를 누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진에 나타난 디테일, 계조, 효과등등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릴때처럼 하나하나 만들어 넣은 것은 아니거든. 인화된 사진을 보면, 그것에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보이기보다는 기계의 싸늘한 시각이 느껴질때가 있어. 그래서 사진은 공포다.
다시, 사진이 가져온 시각적인 자유도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할때의 자유는 아니겠지. 그것은 인간으로부터도 이탈한, 인간의 의지와 개념을 초월한 기계화된 무의식의 자유겠지.
난 신을 믿지 않고 기계를 믿는 것 같어.

Unknown :

난 반항하지 못하는 강요가 진짜 폭력이라고 생각해. 차라리 주먹질은 그 보다는 덜 폭력적이지. 권력이 강요하는 어떤 것이나 내가 정의한 사진의 시점이나... 그게 그거란 생각에서 사진은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건데...

그런데 이런 의견이 진짜 생각해볼만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헛소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이야기 많이 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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